[시론] 규제자유특구 계기로 '규제프리' 이뤄야
한국은 규제가 참 많은 나라다. 세계 100대 벤처기업 중 70개가 한국에서는 불법이라고 하니 ‘규제공화국’, ‘문명의 갈라파고스’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물론 산업 현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정부가 적절한 통제를 함으로써 예상되는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규제가 고착화되면서 한국과 세계 문명의 격차가 커져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잃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규제자유특구’ 사업이다. 서울 여의도 2배 크기의 지역을 선정하고, 규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빚었던 원격의료·블록체인·자율주행차 등의 신산업을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규모가 다소 작고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원격의료 사업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숙원사업이다. 이번 특구 사업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강원도 오지에 있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을 위한 원격의료 서비스 도입이다. 그런데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탓에 진단과 처방은 간호사 입회 아래 해야 하는 조건이 붙고 말았다. ‘규제프리’는 이렇게나 어렵다. 물론 의료계의 반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기 밥그릇 쉽게 내 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문제의 핵심은 미래가 이미 디지털 문명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쓰는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가 표준인류가 되는 시대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모바일뱅킹 사용자 비율은 국민의 63.5%(2018년 12월 기준, 한국은행 발표)를 넘어 은행업무의 표준이 됐다. 한국에서 유튜브는 하루 평균 접속이 3000만 회를 돌파하면서 TV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미국에서는 백화점의 3분의 1이 문을 닫았고 20%의 소매체인 전문점이 이미 파산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40억 ‘포노족’들의 자발적 소비 패턴 변화에 따른 현상들이다.

세계의 자본은 포노족 문명 확산에 더욱 거세게 베팅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 등 포노족 문명을 이끄는 세계 7대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는 무려 6000조원을 넘었다. 이 자본이 집중 투입되는 곳이 인공지능·원격의료·자율주행·블록체인·로봇 등 이번 규제자유특구 사업에서 선정한 분야들이다. 이번 특구사업이 미래 한국 경제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포노족 문명의 특징은 모든 비즈니스의 근간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의료서비스가 디지털 플랫폼을 만나면 획기적인 서비스 개선이 이뤄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디지털 의료서비스를 도입했고, 엄청난 자본 투입으로 기술발전과 산업화가 착착 진행 중이다. 우리가 규제하는 사이 미국, 중국, 일본의 디지털 의료서비스가 우리 의료시장을 덮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접속해 써 보니 미국 원격의료서비스가 좋더라” 하는 순간 포노족들은 몰려간다. 마치 유튜브와 아마존 해외직구에 우리 국민이 물밀 듯이 밀려드는 것처럼 말이다.

TV를 안 본다고, 은행창구에 안 온다고, 가게 매출이 줄어든다고 한탄만 하고 있거나 규제로 막을 궁리만 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 혁명의 시대를 준비하는 첫 발걸음은 혁명을 인지하는 것이다. 규제자유특구 사업의 소명은 몇 가지 산업을 키우는 데 있지 않다. 온 국민에게 혁명의 시대가 왔으니 한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손잡고 나아가자는 강력한 메시지다. 규제자유특구 사업이 한국에 깊이 드리운 흥선대원군식 쇄국의 그림자를 지우고 미래로 가는 희망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