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화이트리스트서 韓 제외' 가능성 앞두고 관여로 선회 관측
한일정부의 설득전·3국 공조 균열 우려 등 반영된 듯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에 상당한 변화의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한일 양국이 외교로 해결할 문제라며 표면적으로 거리를 두는 분위기였던 미국이 양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고 역할 모색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다음 달 2일 각의에서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대상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양새다. 미국은 30일(현지시각) 해법 모색 차원에서 두 가지 메시지를 발신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양국이 분쟁을 멈추는 일종의 '분쟁 중지 협정'에 합의할 것을 양측에 촉구했다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번 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3국의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일이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3자가 한자리에 모여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군다나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키로 결정하면 양국 관계는 더욱 급랭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한일 중 어느 한쪽을 편드는 듯한 모양새에 부담을 느껴 직접적인 중재나 개입에 나서기 힘들다는 그동안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블룸버그통신은 한일 양국 정부가 백악관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미국의 반응을 촉발하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가 미국의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를 만나기 위해 고위 관료를 워싱턴으로 보내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고 미 언론과 기업 경영진을 상대로도 로비했다는 것이다.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이 이번주 말에 재개하는 일본과의 양자 무역협상 대상에 이 문제를 포함하도록 설득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입장에서 한일 갈등을 방치할 경우 북한 비핵화와 중국 견제 등 한미일이 협력해야 할 중요 현안의 공조에서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 체계에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국 기업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기술산업 관련 5개 단체는 최근 한국과 일본 정부에 각각 서한을 보내 한일 갈등이 국내외 기업과 근로자에게 장기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블룸버그통신에 "미 정부가 마침내 개입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분쟁중지 합의가 양국 간 긴장을 완화하는 유용한 첫 단계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14년 한일 정부 갈등시 당시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여하는 3자 회담을 꾸려 미국의 영향력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에 몸담았던 에반 메데이로스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워싱턴은 양측이 다 귀를 기울일 유일한 행위자"라며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에까지 들어가 얼마나 적극적인 역할을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로선 양국의 갈등이 더이상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나라가 모여 협의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상황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도 분쟁중단 협정 제안과 관련해 한일 양국 간 이견 자체를 해소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양측 간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추가 조치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