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근로시간 단축, 시장의 합의·계약에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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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 기간 놓고 다투지 말고
정부 간섭 늘리는 법·제도 바꿔
필요한 사람은 맘껏 일하게 해야
박기성 <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
정부 간섭 늘리는 법·제도 바꿔
필요한 사람은 맘껏 일하게 해야
박기성 <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
![[시론] 근로시간 단축, 시장의 합의·계약에 맡겨야](https://img.hankyung.com/photo/201907/07.14913182.1.jpg)
이런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의 서면합의에 따라 3개월 이내의 기간 동안 평균 주 52시간 범위에서 1주 최장 64시간까지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계절에만 팔리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 또는 집중적으로 연구개발을 해 신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의 경우 3개월로는 부족하고, 6개월~1년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필요한데, 6월 국회에서는 단위기간 확대 방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2017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2년 사이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273시간에서 2148시간으로 125시간(5.5%) 단축됐다. 취업자 전체의 총근로시간은 연 25억5000만 시간(4.1%)이나 줄었다. 근로자 개인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다른 근로자의 채용이 늘어 총노동투입량은 줄지 않아야 하는데, 이처럼 총노동투입량이 감소하고 설비투자가 위축되면서 경제가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은 최저임금, 초과근로급여, 기록보관, 아동노동보호 외에 별 내용이 없다.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해 50% 이상 가산임금을 지급하면 되고, 한국처럼 하루 12시간, 1주 52시간 등과 같은 최장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은 없다. 그런데도 평균근로시간은 한국보다 훨씬 짧다.
미국에서는 사무·관리·전문직은 초과근무를 해도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white color exemption)’이 공정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어 이들은 ‘칼퇴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근로자들은 원하는 만큼 근무하고 시간급을 받는다. 그런데도 평균근로시간이 한국보다 짧다는 것은 근로시간 단축이 법적 강제가 아니라 근로자와 기업의 선택 결과로 이뤄지며, 그래야 총노동투입량의 감소 없이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일을 못 하도록 막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 한국에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이 도입되면 평균근로시간이 7% 정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이런 근본적인 처방 대신 법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하고 그 부작용을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으로 완화하려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원의 컴퓨터 전원을 끄는 광경을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을까.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정부는 가부장적 개입을 자제하고 경제주체 간 합의나 계약에 의해 노동시장이 돌아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일을 하려는 사람은 마음껏 일하게 하고, 고용을 하고자 하는 기업은 최대한 고용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