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LG의 '조성진 매직'
생활가전은 흔히 ‘백색(白色)가전’으로 불린다. 초창기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판매한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이 주로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TV와 오디오는 검은색이 많아 흑색가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요즘 나오는 가전제품은 형형색색 화려한 옷을 입어 ‘백색(百色)가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GE는 1905년 전기 토스터, 1910년 전기레인지를 내놓은 백색가전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GE 가전사업 부문은 2016년 중국 하이얼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월풀은 1911년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세탁기를 선보인 기업이다. 오랜 기간 세계 생활가전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켜왔다.

GE와 월풀이 ‘구(舊)가전의 상징’이라면 LG전자는 ‘신(新)가전 명가’다. LG전자는 올 상반기 매출 11조5687억원을 기록해 월풀의 99억4600만달러(약 11조3982억원)를 넘어섰다. LG전자는 2017년 영업이익에서 월풀을 앞섰지만 이번에 매출까지 압도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생활가전 1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세상에 없던 가전’을 잇달아 내놓은 게 주효했다. 의류관리기인 ‘스타일러’, 드럼·통돌이 결합형 세탁기 ‘트윈워시’ 등이 대표적이다. 조성진 부회장의 주도로 적용한 모듈 생산방식은 수익률 향상에 기여했다. 각종 부품을 표준화하고 몇 가지 독립된 패키지로 조합하는 방식을 통해 제조시간과 불량률을 크게 낮췄다.

조 부회장은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LG전자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해 40년 가까이 세탁기 한길을 파고든 세탁기 전문가다. LG 세탁기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마다 그 중심에 조 부회장이 있었다. 10년 동안 150차례 일본을 드나들며 앞선 기술을 배우고, 사무실에 침대와 주방기구를 놓고 개발에 몰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가전사업 전체를 맡게 되자 세탁기의 혁신 DNA를 다른 제품으로 확산시켰다. 모터와 컴프레서(압축기) 등 핵심 부품 투자를 꾸준히 늘렸다. 한발 앞서 신가전 기술을 개발하고, 프리미엄 위주 전략으로 새 시장을 창출했다.

R&D는 기업 성장과 국가경쟁력 향상의 원천이다. 제2, 제3의 ‘조성진 매직’을 기대하는 이유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시행 후 기업 연구단지에서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연구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제도 개선이 없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