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생산직 공장 근로자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일한 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 이유일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여전히 최저 근로조건, 정당한 이유 없는 불이익 금지, 임금 지급 의무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근로자 종류는 너무도 다양해졌고 사무직 근로자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근로기준법과 현실 간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탄력근로제 재량근로제 등 다양한 유연근무제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경험한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white collar exemption: 사무직 근로자는 근로시간을 제한하지 않음)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왔다.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은 관리직(executive) 전문직(professional) 행정직(administrative) 화이트칼라 종사자 중 주급을 455달러 이상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제한 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 세금, 회계분야 전문가뿐 아니라 기업의 마케팅, 구매, PR담당자도 포함된다. 식당과 같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두 명 이상의 직원을 관리하는 지위에 있으면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단순 업무를 하는 사무직을 제외하면 대다수 화이트칼라가 속하는 셈이다. 이들에게는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초과근로 수당도 없다.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이 커지자 국내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반대로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고용노동부는 대신 재량근로제 대상 직종을 찔끔 늘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를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재량근로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이다. 지금처럼 포지티브 방식으로 해당 업종을 나열할 게 아니라 ‘원칙 허용, 예외 금지’의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노사 간 서면합의’가 필수인 요건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 업무는 지금도 재량근로 대상이지만 노사 간 합의 불발로 오후 6시면 연구소 불이 꺼지는 게 현실이다.

더 궁극적으로는 화이트칼라의 근로시간에서 정부가 완전히 손을 떼는 날이 와야 한다. 한국판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을 늦춰서는 안 된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