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2일 현재 약 23만6000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리얼돌은 머리스타일이나 점의 위치 등까지 고를 수 있고 심지어 원하는 얼굴로도 맞춤제작도 해준다”며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로 리얼돌을 만든다면 (당사자의)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실제와 구분하지 못한 채 여성을 성적도구로 착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한 리얼돌 구매대행 업체가 “원하는 얼굴로 리얼돌을 주문제작할 수 있다”고 홍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 업체 홈페이지의 질문 게시판에는 “리얼돌 얼굴을 원하는 얼굴(연예인, 이상형)로 주문제작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해 “가능하다”는 답변이 올라와 있다. 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리얼돌 제품들은 100만~2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었다. 해당 사이트 외에도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광고를 하는 리얼돌 판매업체에서도 ‘원하는 얼굴과 키, 사이즈 등 모두 주문제작이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곳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앞서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유명 연예인과 닮은 얼굴을 한 리얼돌이 판매되고 있다. 한 해외 사이트에는 스칼렛 요한슨 등 할리우드 배우와 유사한 얼굴을 한 리얼돌이 판매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또 다른 해외 사이트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본딴 리얼돌을 만들고 제품 소개에 해당 배우의 사진을 붙여놓기도 했다. ‘브래드(Brad)’라는 이름의 이 제품에는 “유명 배우의 20대 시절 모습을 닮은 리얼돌”이라고 소개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 vs “개인의 자유” 리얼돌 허용 논란은 2017년 한 성인용품 수입업체가 리얼돌 수입 신고를 했다가 인천세관으로부터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입통관을 보류하자 해당업체가 소송을 내면서 법정으로 넘어갔다. 해당 리얼돌은 길이가 159cm로 성인 여성의 신체를 본딴 제품이다. 1심 재판부는 “물품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 및 왜곡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의 특정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묘사했다”며 수입 금지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지난 1월 2심에서는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목적으로 한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해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이어 대법원도 2심을 확정했다.
이를 두고 각 여성단체들의 거센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들은 “사람의 모습을 한 리얼돌을 성기구와 같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여성의 모습을 한 리얼돌이 다수인 만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데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20대 여성은 “성기구에 얼굴이 있는 것 자체가 인격화하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성기구와 달리 리얼돌은 유독 ‘인간 여성’의 모습과 비슷한 데다 얼굴마저도 연예인이나 지인 얼굴을 형상화하면 타인의 초상권 침해는 물론 성척 수치심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반발에 맞서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개인의 자유’를 이유로 ‘리얼돌의 수입은 허용돼야 한다’는 찬성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대법원 판결에도 세관에서 아직 지침을 명확히 하지 않아 아직 리얼돌이 통관보류되고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리얼돌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