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서울교육청과 부산교육청이 내린 10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에 2일 동의했다. 이날 자사고 취소 결정이 내려진 서울 강동구 배재고에서 한 학생이 하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서울교육청과 부산교육청이 내린 10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에 2일 동의했다. 이날 자사고 취소 결정이 내려진 서울 강동구 배재고에서 한 학생이 하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지역 자율형 사립고 아홉 곳과 부산 해운대고가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교육부는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이대부고 중앙고 한대부고 경문고 해운대고 등 열 개 자사고의 지정 취소에 동의한다고 2일 발표했다.

경문고를 제외한 아홉 개 학교는 시·도교육청이 진행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 점수를 넘지 못했다. 경문고는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자진 취소 신청을 했다. 이번 지정 취소 결정으로 서울의 자사고는 22개에서 13개로 줄었다. 부산에서는 자사고가 한 개도 남지 않게 됐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자사고 지정취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자사고 지정취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이날 “서울교육청과 부산교육청의 자사고 운영성과평가 절차 및 내용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전날 장관 자문기구인 ‘특수목적고 등 지정위원회’를 열어 열 개 학교의 지정 취소 여부를 심의했다.

서울교육청은 교육부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자사고공동체연합은 “교육부 결정은 대(對)국민 기만행위”라며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해 처분을 무력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자사고 죽이기' 현실화…올해만 33% 사라질 듯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줄취소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 6·13 지방선거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4곳에서 자사고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자사고 폐지를 통한 고교 체제개편은 진보 교육감의 지지를 받아 더 큰 동력을 얻게 됐다.

현 정부의 ‘자사고 죽이기’ 정책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내년 평가 대상 자사고는 전국 16개 학교다. 이 중 4개 학교는 이미 자진 취소를 신청했다.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도 안전하지 않다. 서울 지역에만 내년에 재지정 평가를 받는 특목고가 10개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감은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은 올해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학교는 물론 재학생과 학부모, 중학교 3학년 학생들까지 교육당국의 처분만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사고 죽이기 위한 밀실·야합 평가”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시작 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 서울지역 평가 대상 자사고 13개 학교는 지난 3월 “이번 평가는 자사고 폐지로 답이 정해진 ‘나쁜 평가’”라고 주장하며 평가에 필요한 보고서 제출을 집단 거부하기도 했다.

서울교육청은 올해 평가부터 자사고 지정 취소 기준 점수를 기존 60점에서 70점으로 올렸다.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큰 정성평가 요소도 대폭 확대했다. 교육청이 감사 등을 통해 깎을 수 있는 점수도 기존 최대 5점에서 12점까지 올렸다. 모든 항목에서 ‘우수(A)’를 받아도 80점인 가운데 교육청이 자의적으로 12점을 감점하면 기준 점수를 넘을 수 없다는 게 자사고 측 설명이다.
서울·부산 10개校 '자사고 취소' 확정
사회통합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려는 노력과 충원율을 평가하는 항목의 배점이 높아진 것도 논란이 됐다. ‘소득이 8분위 이하인 가정의 자녀’만 지원할 수 있는 이 전형에 지원자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평가 배점을 높였다는 것이다. 올해 신입생 선발 때 모든 자사고의 사회통합전형은 지원자가 미달이었다. 평가지표가 지난해 12월 말에야 통보돼 평가 기준에 맞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배재고와 세화고 등 서울지역 8개 자사고와 부산 해운대고에 지정취소 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서울교육청과 부산교육청의 평가 절차와 내용이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지정취소 결정이 내려진 서울의 한 자사고 교감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획된 평가를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적법하다고 판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자사고교장연합회와 자사고학부모연합회 등이 속한 자사고공동체연합도 입장문을 통해 “자사고 죽이기를 위해 기획된 밀실·야합·깜깜이 평가에 교육부가 동의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올해 자사고 3분의 1 사라져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전국 단위 자사고가 모두 살아남자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자가당착에 빠진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교육부가 부동의 결정을 내려 부활한 전주 상산고를 비롯해 경북 포항제철고와 강원 민족사관고 등 전국 단위 자사고 8개 학교는 올해 평가를 모두 통과했다. 교육부는 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해 학교 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중학교 때 내신 성적과 면접을 통해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는 전국 단위는 살려놓고, 추첨과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서울지역 자사고를 비롯한 광역 단위 자사고만 없애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로 24개 학교 중 10개가 기준점수를 넘지 못해 일반고로 전환하게 됐다. 내년 평가 예정 학교인 경문고와 군산중앙고는 자진 취소를 신청해 일반고로 전환됐다. 대구 경일여고와 전북 남성고도 자진 취소를 신청해 교육부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교육부가 두 학교의 자진 취소를 받아들이면 전체 자사고 42개 중 14개(33.3%)가 올해 폐지된다.

자진 취소를 고려하는 전국 단위 자사고도 나왔다. 포스코교육재단 등에 따르면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통과한 포항제철고는 포스코의 출연금이 줄어 재정 자립이 불가능해 일반고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역 교육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정부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감은 “올해만 전체 3분의 1에 달하는 자사고가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추세라면 수년 내 고교 하향평준화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종관/정의진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