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가상화폐거래소들이 잇달아 실명계좌 재계약에 성공했다. 은행으로부터 실명 계좌를 받지 못하면 원화로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없는 만큼 거래소들은 실명계좌 보유에 사활을 걸어 왔다. 가상화폐거래소에 대한 자금세탁 방지 의무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업계 경쟁구도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4일 가상화폐업계에 따르면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주요 가상화폐거래소 4곳은 실명계좌 계약을 모두 연장했다. 이들 거래소는 지난달 말 실명계좌 계약이 종료됐다.

실명계좌는 가상화폐거래소가 거래하는 은행과 같은 은행의 계좌를 가진 이용자에게만 해당 계좌를 통해 입출금하게 만든 제도다. 정부가 지난해 1월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시행하면서 도입했다. 빗썸과 코인원은 농협은행, 업비트는 기업은행, 코빗은 신한은행과 각각 실명계좌 계약을 맺었다. 가상화폐거래소들은 6개월마다 거래 은행과 연장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빗썸과 코인원은 농협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6개월 연장했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두 업체에 대해 현장 실사를 거쳐 계약을 6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평가 항목은 △이용자의 신원사항 확인 △회사재산과 고객 예탁·거래금 분리 △이용자별 거래내역 구분 관리 △정부의 가상화폐 관련 정책 준수 여부 등이다. 빗썸 측은 “고객자산 보호 조치가 높은 평가를 받은 데다가 업계 최초로 지난달 자금세탁방지센터를 신설했다”며 “보이스피싱을 방지하기 위해 농협은행과 공조하는 등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업비트도 기업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연장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단 기업은행은 신규 회원에 대한 계좌는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거래 실명제 도입 전 기존 회원들에게만 실명거래 계좌를 내주고 있다는 뜻이다. 코빗도 신한은행과 계약을 마무리했다. 앞서 코빗은 금융사기 신고가 접수돼 실명 계좌 거래가 잠정 중단됐다. 실명거래 계좌가 연장된 만큼 지급 정지도 풀릴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잇단 가상화폐 실명거래 계좌 연장에 업계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최근 가상화폐거래소 규제가 전반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와중에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 6월 가상화폐거래소에도 금융회사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했다. 만약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영업 허가를 취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가상자산 관련 국제기준 및 공개성명서를 채택했다. 이 권고 기준을 근거로 한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도 이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들 거래소를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는 실명 계좌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향후 규제 강화 분위기와 맞물려 가상화폐거래소업계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 이상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여서 실명계좌 연장이나 신설이 어려워졌다”며 “중소 거래소는 시스템·인력 상황이 열악해 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