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응 카드는
한국 정부가 ‘맞보복 카드’로 쓸 수 있는 일본 수출 품목은 얼마나 될까. 한국경제신문 분석 결과 한국이 화이트리스트 규제를 통해 일본에 타격을 줄 만한 품목은 14개로 조사됐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에 따른 고(高)위험 품목(83개)과 비교하면 16.9%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한국이 보유한 카드가 많지 않은 만큼 무역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일본에 타격 줄 수 있는 품목 ‘제한적’
전략물자관리원 자료와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기반으로 지난해 일본의 한국산 수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략물자 중 수입액이 1000만달러 이상이면서 수입 비중이 50%를 넘는 품목은 14개로 집계됐다. 부문별로는 △철강 9개 △화학 3개 △조선 2개 등이다.
이 중 대부분은 한국이 전략물자 수출을 제한하더라도 제3국에서 비교적 쉽게 충당할 수 있는 물품으로 분석됐다. 14개 품목 가운데 한국산 수입액이 가장 많은 ‘폭 600㎜ 이상, 두께 1~3㎜ 스테인리스강 냉간압연제품’(1억4248만달러)이 대표적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해당 제품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물품이 아니기 때문에 제3국에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일본 수출을 제한하더라도 일본 기업이 수개월 내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용 내연기관 등 조선과 관련된 두 개 품목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수출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그쳐 규제 효과가 크지 않다.
그나마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화학 분야 품목이다. 지난해 일본이 수입한 질산과 황질산은 모두 한국산이었다. 관련 물질이 정밀화학제품 및 의료 관련 제품 제조 등에 두루 쓰이는 만큼 효과도 높다는 분석이다. 비금속 할로겐화물은 일본 내에서 한국산 수입 비중이 89.8%에 달한다. 다만 일본의 관련 산업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분야에서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6.2%로, 한국(36.2%)에 이어 2위다. “반도체 보복은 현실성 떨어져”
일각에선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D램 반도체로 맞보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품질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끊으면 소니 등 일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반도체를 무기로 쓰면 오히려 한국의 손해가 커질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높고 일본이 중국 또는 대만산으로 수입을 대체할 수 있으며, 무역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본의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수입액 중 한국 비중은 17.0%였다. 대만산 반도체(59.3%) 비중이 훨씬 높았다. 반면 한국으로선 반도체산업은 전체 수출 비중의 20%를 넘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D램은 일본이 마이크론 대만 공장으로 수입처를 바꿀 수 있고, 낸드 메모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며 “반도체를 무기화하면 살을 치기 위해 뼈를 내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도 비슷하다. 일본 기업은 TV용 OLED 패널을 LG디스플레이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수출을 끊으면 되레 LG디스플레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이 강점을 지닌 디스플레이와 자동차 부품 등은 수출 절차상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통한 규제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애초 전략물자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품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개별허가 절차를 밟도록 하는 ‘캐치올 규제’를 적용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일본 역시 목재 식료품 외 모든 분야에서 ‘재보복’에 나설 명분만 줄 수 있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상호 보복 수위를 높여가면 양국 모두 커다란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민준/성수영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