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배상 판결’로 시작된 갈등이 폭발 지경인 가운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가 핵심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온 지 불과 보름여 만에 당·정·청 전반에서 ‘파기’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파기 여론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신중론을 펴던 이해찬 대표까지 최근 파기 쪽으로 급선회했다. 외교부도 지난 주말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지소미아 재고’ 의사를 양국에 전달했다. 결정권을 쥔 청와대 역시 ‘군사정보 공유 중단을 포함한 종합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며 파기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유효 기간이 1년인 지소미아는 일방의 파기 의사 통보만으로 중단되며, 올해 통보시한은 이달 24일이다.

“신뢰와 안보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어떻게 군사정보를 공유하겠느냐”는 게 파기론자들의 논리다. 지소미아의 활용 현황, 중요도를 감안할 때 합리성을 결여한 주장이다. 미국의 강력요청으로 2016년 11월 발효된 지소미아는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주요 수단이다. 핵·미사일 동향분석도 세 나라의 정보가 종합될 때 정확도가 급상승한다. 1급 비밀은 제외하고, 철저하게 1 대 1로 교환하는 방식인데도 일본에 우리의 군사비밀을 노출하는 것처럼 오도해서는 곤란하다.

미국에 중재를 촉구하는 ‘카드’로 지소미아를 활용하자는 주장도 무책임하다. 세 나라 간 긴밀한 정보 교류를 막아서는 모양새라면 미국의 오해와 불신을 더 키우게 될 것이다. 북한 위협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가 한국인 만큼 지소미아 파기에 따른 피해도 한국이 가장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치적 문제를 경제보복으로 끌고간 일본을 비난해온 한국이 안보문제로 확전시키는 것도 명분 없는 일이다. 만료시한을 기다리지 말고 연장의사를 밝히고, 이를 갈등 해소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