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최근 태국 방콕 센타라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강 장관 오른쪽으로 왕이 중국 외교부장,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앉아있다. 사진=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최근 태국 방콕 센타라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강 장관 오른쪽으로 왕이 중국 외교부장,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앉아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배제 조치에 맞서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과 똑같이 ‘눈에는 눈’ 전략을 쓰겠다는 겁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통해 일본 등 29개국을 사용자포괄수출허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로 지정해 포괄 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일본 수출품목에 대해 건별 심사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우리의 맞대응 조치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분명한 건 내수 시장이 작고 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경제인데 반해 일본은 내수위주 경제란 점입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은 40%대, 일본은 15%대이죠. 일본은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정부는 일본의 무역규제에 따라 전략품목 1194개(일본의 수출 전략물자) 중 핵심인 159개가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이 품목은 대일 의존도와 파급효과가 높고, 국내외 대체 가능성은 낮은 겁니다. 일본의 정밀 소재·부품을 바탕으로 완제품을 대량 생산해 해외에 판매하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타격이 클 수밖에 없지요.

반면 우리가 일본으로 가는 상품을 규제할 경우 일본에 ‘영향’을 끼칠 만한 품목은 총 14개로 조사됐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전략물자관리원과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바탕으로 수입액 1000만달러, 일본의 한국산 수입 비중 50% 이상 품목을 전수 조사한 결과입니다. 품목 수가 매우 적지만 더 문제인 건 일본으로선 ‘필수품’이 아니란 겁니다. 얼마든지, 거의 즉각적으로 제3국 대체가 가능한 품목이 많습니다. 결국 일본을 상대로 수출규제에 나서면 우리 기업들만 더 어려워지고, 거래처만 끊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D램 반도체나 낸드플래시는 어떨까요. 비메모리면 몰라도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대만이나 중국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또 일본의 작년 메모리반도체 수입액 중 한국 비중은 33.2%(한국기업의 중국공장 생산분 포함)에 불과했지요. 오히려 대만산 수입 비중(59.3%)이 훨씬 높았습니다.

정부는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에 나서는 전략물자에 대해 관세를 낮추고, 세무조사를 유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관리대상인 159개 품목에 대해선 보세구역 내 저장기간을 연장하는 한편 수입신고 지연 가산세도 면제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일본이 ‘안 팔겠다’는데 관세인하, 세무조사 유예, 수입지연 가산세 면제 등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부 조치의 효용성에 대해 한 공무원은 “사실 필리핀이 한국에 망고를 팔지 않겠다고 해서 한국이 타격을 받겠느냐. 우리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배제하겠다고 밝힌 건, 우리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걸로 해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외교·통상·경제 전문가들은 한·일 간 분쟁이 최소 1~2년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권은 내년 총선, 일본 정치권은 평화헌법 개정이란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기 때문이란 진단입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호 보복전이 확대되고 장기화하는 건 가장 불행한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상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일본이 추가 조치를 취할 명분을 줘선 안된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