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五面楚歌 안보위기 부를 지소미아 파기
한·일 정부가 악령에 씌기라도 한 것인가. 한국 법원이 작년 11월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판결하면서 지펴진 한·일 갈등의 불씨가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로 이어졌다. 또 지난 2일 아베 신조 내각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청와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자는 것인가. 이런 식의 감정싸움은 양국 모두에 상처를 남기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일 뿐이다. 중국의 팽창주의와 신냉전이 동아시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대에 한·일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초로 한 이웃으로 공생(共生)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감안한다면, 아베 정부가 ‘한국 때리기’에 광분하는 것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문재인 정부도 뾰족한 대안 없이 ‘죽창론’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국정 실패를 국민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지소미아부터가 그렇다. 지소미아는 2016년 11월 23일 서명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분명 양국 모두의 안보이익에 부합한다. 가열되는 동북아의 신냉전 대결구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북핵 문제, 점증하는 한·미·일 안보공조의 필요성 등을 종합하면 지소미아는 한국에 더욱 절실한 것이다. 북한 미사일의 사실상 타깃이 한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이에 대비하는 것은 당면과제지만 일본은 0.1%도 되지 않는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지소미아를 한·일 감정싸움의 제물로 삼겠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 우선, 북핵 대처에서 한국이 앞서는 지리정보 및 인간정보(humint)와 일본의 우월한 기술정보를 공유해 정보의 신뢰성을 보완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 일본의 최첨단 기술정보력은 한국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일본은 5기의 정찰위성 외에 1000㎞ 이상의 탐지거리를 가진 지상감시레이더, 조기경보기, 해상초계기, 이지스함 등을 다수 운용하고 있다. 한 기의 정찰위성도 보유하지 못한 한국의 기술정보력은 여기에 크게 못 미친다. 일본은 잠수함 정보와 감청능력(SIGINT)에서도 최강이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본격 배치하면 일본의 대잠수함 정보는 한국의 안보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지소미아는 2014년 체결된 한·미·일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공유약정(TISA)’을 보완한 것이다. 세 나라 간 안보협력을 위한 발판으로서 한·미 동맹 유지·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이 작지 않다.

지금은 정부가 반일(反日)감정을 부추기고 ‘지소미아 파기’를 검토할 때가 아니다. 지난달 23일 독도 상공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더라도 그렇다. 중·러의 공군기들은 마음대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과 영공을 유린했고, 한국이 전투기를 발진시키자 일본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전투기를 출격시킨 뒤 한국에 항의했다. 누가 이 ‘뒤죽박죽 안보위기’를 초래했는가. 그 와중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계속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쾌하지 않다”고 했으며, 작금의 한·일 갈등에 대해서도 방관하고 있다. 중·러·북·일로부터 압박을 받는 중에 동맹국에도 외면당하는 ‘오면초가(五面楚歌)’의 안보고립은 누가 자초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정책실패에 대해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엄청난 추가부담을 강요하는 반일(反日) 캠페인은 멈춰야 한다. 아베 정부도 그렇다. 피해국의 정서와 한·일 공영(共榮)을 바라는 양국 다수 국민의 바람을 헤아린다면 오만방자한 ‘한국 때리기’를 그만둬야 한다. 문재인·아베 정부는 양국 국민을 적대적 관계로 내모는 ‘증오의 굿판’을 당장 거두고 중재방법을 논의하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