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분쟁 때 "뺏지 않았다" 대기업이 입증해야…'상생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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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산업위 통과한 '대·중기 상생법 개정안' 입수
당국 "기술탈취 관행 개선 기대"
경영계 "규제당국이 할 일을…"
당국 "기술탈취 관행 개선 기대"
경영계 "규제당국이 할 일을…"
소기업과 대기업 간 기술탈취 분쟁이 생겼을 때 입증 책임을 앞으로 대기업이 지도록 관련법이 개정된다. 그간 대기업의 기술탈취 논란이 일었을 때 정보와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이 자료제시 등 입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규제당국이 져야 할 기술탈취 입증 책임을 대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배제 등으로 기술독립이 산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안이 상생협력보다 책임소재를 가리겠다며 대·중소기업 간 갈등과 분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생법 개정안 산업위 통과
8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상생법 개정안)에 따르면 개정안은 기술유용행위의 입증 책임을 위탁기업(대기업)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했다고 보는 상황은 두 가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생산해온 것과 비슷한 물품을 직접 제조하거나 다른 기업에 제조를 맡겼을 때 △기존 중소기업과 거래를 끊고 같은 물품을 다른 기업과 거래하기 시작했을 때다. 이 같은 상황이 의심돼 조사가 시작되면 대기업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직접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중소기업 간 거래일 때는 위탁기업에 입증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만 입증 책임이 대기업으로 넘어온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기술 자료를 제공할 때는 비밀유지협약을 맺어야 하고 이를 어기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대기업이 기술탈취로 중소기업에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되면 손해의 세 배 안에서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차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회부될 예정이다.
“정보 비대칭성 vs 규제기관 책임 전가”
상생법 개정안은 그간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했다고 의심되더라도 중소기업이나 규제당국이 이를 입증하기 어려웠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맞서 피해사실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위탁기업은 수탁기업이 제공한 기술 자료와 거래 내역 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했다”며 “납품단가 조정과 관련해선 이미 대기업에 입증 책임이 부과된 만큼 기존 법안의 적용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영계는 상생법 개정안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기술자료의 특징을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그간 기술탈취를 입증하지 못한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 아니라 기술자료가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대로라면 대기업이 경영상 필요해 자체 제작하거나 거래처를 변경만 하더라도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생긴다”며 “일단 분쟁에 휘말리면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야 하는 셈이어서 기업의 행정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안의 기술탈취 판단 근거도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은 대기업이 기존에 납품받던 것과 비슷할 때도 기술유용이 이뤄졌다고 규정한다. 재계 관계자는 “비슷한 제품의 범위는 자의적”이라며 “적용 기준이 모호한 만큼 의심하기는 쉽고 무죄를 입증하기는 어려운데 규제기관이 져야 할 책임을 대기업에 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중기부 처벌권한도 강화
상생법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처벌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법안이 통과되면 중기부는 자체 조사 결과 상생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기업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기존에는 먼저 거래당사자가 중기부에 분쟁조정을 요청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었다.
중기부의 처벌권한이 강화되면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중복 규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기술탈취 등을 조사하고 시정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같은 사안에 대해 중기부와 공정위가 동일한 처벌권한을 갖는다. 행정력 낭비와 중복 처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기존에 있던 절차를 간소화하고 처벌권한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8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상생법 개정안)에 따르면 개정안은 기술유용행위의 입증 책임을 위탁기업(대기업)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했다고 보는 상황은 두 가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생산해온 것과 비슷한 물품을 직접 제조하거나 다른 기업에 제조를 맡겼을 때 △기존 중소기업과 거래를 끊고 같은 물품을 다른 기업과 거래하기 시작했을 때다. 이 같은 상황이 의심돼 조사가 시작되면 대기업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직접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중소기업 간 거래일 때는 위탁기업에 입증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만 입증 책임이 대기업으로 넘어온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기술 자료를 제공할 때는 비밀유지협약을 맺어야 하고 이를 어기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대기업이 기술탈취로 중소기업에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되면 손해의 세 배 안에서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차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회부될 예정이다.
“정보 비대칭성 vs 규제기관 책임 전가”
상생법 개정안은 그간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했다고 의심되더라도 중소기업이나 규제당국이 이를 입증하기 어려웠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맞서 피해사실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위탁기업은 수탁기업이 제공한 기술 자료와 거래 내역 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했다”며 “납품단가 조정과 관련해선 이미 대기업에 입증 책임이 부과된 만큼 기존 법안의 적용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영계는 상생법 개정안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기술자료의 특징을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그간 기술탈취를 입증하지 못한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 아니라 기술자료가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대로라면 대기업이 경영상 필요해 자체 제작하거나 거래처를 변경만 하더라도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생긴다”며 “일단 분쟁에 휘말리면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야 하는 셈이어서 기업의 행정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안의 기술탈취 판단 근거도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은 대기업이 기존에 납품받던 것과 비슷할 때도 기술유용이 이뤄졌다고 규정한다. 재계 관계자는 “비슷한 제품의 범위는 자의적”이라며 “적용 기준이 모호한 만큼 의심하기는 쉽고 무죄를 입증하기는 어려운데 규제기관이 져야 할 책임을 대기업에 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중기부 처벌권한도 강화
상생법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처벌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법안이 통과되면 중기부는 자체 조사 결과 상생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기업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기존에는 먼저 거래당사자가 중기부에 분쟁조정을 요청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었다.
중기부의 처벌권한이 강화되면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중복 규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기술탈취 등을 조사하고 시정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같은 사안에 대해 중기부와 공정위가 동일한 처벌권한을 갖는다. 행정력 낭비와 중복 처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기존에 있던 절차를 간소화하고 처벌권한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