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사진)이 8일 평택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지난달 24일 취임 후 아시아 순방에 나선 그는 호주, 뉴질랜드, 일본, 몽골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에스퍼 장관은 9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를 찾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하고 이어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한다. 회담 뒤에는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다.

정 장관, 강 장관과의 만남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트럼프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예상된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다. 그동안은 3~5년 단위로 협상했지만 지난해부터는 1년 단위로 한국 외교부와 미 국무부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한국의 분담금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트위터에서 한국을 ‘매우 부유한 나라’라고 지칭하고 “한국이 북한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현저히 더 많은 돈(방위비 분담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아직 협상팀도 안 꾸려져 있다. 합의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방한을 앞둔 에스퍼 장관의 협상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된 트윗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정치 전문가들은 “협상 전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에 동의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트럼프 특유의 전략”이라고 비꼬았다.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선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도 논의할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으로 한국을 간접 거론하고 있다. 지난 3일 에스퍼 장관도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며 한국과 일본 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국방부는 이번 회담에서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공식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최근 우리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 카드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기류는 최근 ‘지소미아 유지’에서 ‘파기 신중 검토’로 전환됐지만 미국은 한·미·일 안보 축 유지를 위해 지소미아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