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기지 못할 전쟁 왜 일으켰나"…패전국 日 어긋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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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패망사
존 톨런드 지음 / 박병화 이두영 옮김
글항아리 / 1400쪽 / 5만8000원
존 톨런드 지음 / 박병화 이두영 옮김
글항아리 / 1400쪽 / 5만8000원
1945년 8월 14일 오전 10시50분께 일본 도쿄 총리공관 지하 회의실. 육군 군복을 입고 흰 장갑을 낀 히로히토 일왕이 입을 열었다. “나는 국제 상황뿐만 아니라 국내 상황도 검토했고,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중략) 나는 목숨을 걸고 국민을 구하고 싶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 우리 국가 전체가 초토화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더 사망하게 될 겁니다.”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닷새 뒤였다. 일왕의 항복 담화문은 ‘불경’스럽지 않도록 녹음해서 들려주기로 했다. 그날 밤 11시30분 히로히토는 궁내성에 마련된 NHK 마이크 앞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낭독했다. 다음날 낮 12시 일왕의 항복 담화가 공중파로 일본 전역에 전해졌다. 약 4년의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일본 제국 패망사>는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톨런드(1912~2004)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태평양전쟁은 1941년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됐지만 저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힘을 키운 일본이 일으킨 1931년의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삼국동맹, 미국과의 교섭 결렬, 나치 독일의 유럽 침공 등 그 전사(前史)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태평양전쟁의 본편에서는 공격을 앞둔 일본 군부와 내각 등 수뇌부의 갈등과 대립, 진주만 기습, 일본 육군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 상륙, 싱가포르 함락, 자바섬 장악,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섬·레이테섬·이오섬 전투, 가미카제 특공대 출격, 오키나와 전투, 원폭 투하와 항복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기획과 전개 양상을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일본인 부인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사이판, 괌, 싱가포르 등 전쟁이 벌어진 아시아 지역을 15개월 동안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그가 만난 500여 명 중에는 일왕 수석고문이던 기토 고이치 후작과 군의 최고 지도자들, 전범인 도조 히데키 내각의 구성원과 수백 명의 군 인사, 50여 명의 원폭 피해자와 전쟁포로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당시 일본 최상층부의 의사결정 구조와 의사결정 과정, 각 세력 및 인물 간 갈등과 알력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철저한 고증과 드라마틱한 서술은 그에게 197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안겼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저자는 이런 의문과 함께 책을 시작한다. 일본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대 최강 미국에 싸움을 걸었다. 침략을 앞두고 나가노 해군 군사령부 총장은 일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전쟁을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일본의 석유 비축량이 2년치밖에 안 되며 전쟁이 나면 18개월밖에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3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사상 최초의 원자폭탄까지 맞았다. 전쟁 말기 오키나와와 레이테섬, 일본 본토 등에서의 피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투는 동굴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으로 변했다. 하루평균 1000여 명의 일본인이 죽어나갔다.” “미군이 수류탄과 휴대장약, 화염방사기로 먹잇감을 추격해 생매장시켰다. 전투는 잔혹한 사냥으로 전락했다.”
오키나와에서 열세에 처한 일본군이 선택한 방어작전의 핵심은 가미카제 전술이었다. “비행기 한 대로 한 척의 군함을”이라는 기치 아래 군용기 1500대를 동원한 대규모 가미카제 작전이 일곱 차례나 전개됐다. 22세의 아오키 소위와 17세의 요코야마가 몸집이 크고 느린 2인용 훈련기에 폭탄을 싣고 미국 군함으로 돌진하는 과정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도대체 이런 전쟁을 왜 한 것일까. 저자는 “시대가 악인이었다”고 진단한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일본과 미국을 전쟁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히틀러, 무솔리니와 손잡고 세계 정복을 시도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고 일본은 앵글로색슨 국가가 일본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여겼다. 동맹국인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서 재빨리 전쟁에 끼어든다면 승리에 편승해 이득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기회주의적인 욕심도 깔려 있었다.
패전 후 일본에서는 전쟁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하지만 주변국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비판과 반성이었다. 서양세력의 지배에서 아시아를 구하고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황당한 신념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일본 극우세력이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태평양전쟁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닷새 뒤였다. 일왕의 항복 담화문은 ‘불경’스럽지 않도록 녹음해서 들려주기로 했다. 그날 밤 11시30분 히로히토는 궁내성에 마련된 NHK 마이크 앞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낭독했다. 다음날 낮 12시 일왕의 항복 담화가 공중파로 일본 전역에 전해졌다. 약 4년의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일본 제국 패망사>는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톨런드(1912~2004)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태평양전쟁은 1941년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됐지만 저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힘을 키운 일본이 일으킨 1931년의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삼국동맹, 미국과의 교섭 결렬, 나치 독일의 유럽 침공 등 그 전사(前史)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태평양전쟁의 본편에서는 공격을 앞둔 일본 군부와 내각 등 수뇌부의 갈등과 대립, 진주만 기습, 일본 육군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 상륙, 싱가포르 함락, 자바섬 장악,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섬·레이테섬·이오섬 전투, 가미카제 특공대 출격, 오키나와 전투, 원폭 투하와 항복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기획과 전개 양상을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일본인 부인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사이판, 괌, 싱가포르 등 전쟁이 벌어진 아시아 지역을 15개월 동안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그가 만난 500여 명 중에는 일왕 수석고문이던 기토 고이치 후작과 군의 최고 지도자들, 전범인 도조 히데키 내각의 구성원과 수백 명의 군 인사, 50여 명의 원폭 피해자와 전쟁포로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당시 일본 최상층부의 의사결정 구조와 의사결정 과정, 각 세력 및 인물 간 갈등과 알력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철저한 고증과 드라마틱한 서술은 그에게 197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안겼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저자는 이런 의문과 함께 책을 시작한다. 일본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대 최강 미국에 싸움을 걸었다. 침략을 앞두고 나가노 해군 군사령부 총장은 일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전쟁을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일본의 석유 비축량이 2년치밖에 안 되며 전쟁이 나면 18개월밖에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3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사상 최초의 원자폭탄까지 맞았다. 전쟁 말기 오키나와와 레이테섬, 일본 본토 등에서의 피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투는 동굴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으로 변했다. 하루평균 1000여 명의 일본인이 죽어나갔다.” “미군이 수류탄과 휴대장약, 화염방사기로 먹잇감을 추격해 생매장시켰다. 전투는 잔혹한 사냥으로 전락했다.”
오키나와에서 열세에 처한 일본군이 선택한 방어작전의 핵심은 가미카제 전술이었다. “비행기 한 대로 한 척의 군함을”이라는 기치 아래 군용기 1500대를 동원한 대규모 가미카제 작전이 일곱 차례나 전개됐다. 22세의 아오키 소위와 17세의 요코야마가 몸집이 크고 느린 2인용 훈련기에 폭탄을 싣고 미국 군함으로 돌진하는 과정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도대체 이런 전쟁을 왜 한 것일까. 저자는 “시대가 악인이었다”고 진단한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일본과 미국을 전쟁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히틀러, 무솔리니와 손잡고 세계 정복을 시도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고 일본은 앵글로색슨 국가가 일본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여겼다. 동맹국인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서 재빨리 전쟁에 끼어든다면 승리에 편승해 이득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기회주의적인 욕심도 깔려 있었다.
패전 후 일본에서는 전쟁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하지만 주변국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비판과 반성이었다. 서양세력의 지배에서 아시아를 구하고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황당한 신념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일본 극우세력이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태평양전쟁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