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추격이냐, 추월이냐, 추락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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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 선언…일본은 가만있나
'공개 전략'서 '은밀 전략'으로
경로 '추종' 말고 '창출' 택해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공개 전략'서 '은밀 전략'으로
경로 '추종' 말고 '창출' 택해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자본주의 역사는 선발자와 후발자 간 끝없는 경주라고 볼 수도 있다. 그 관점에 서면 산업 주도권의 이동 그리고 이를 둘러싼 선발자의 견제와 후발자의 추격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산업 주도권의 이동에는 꼭 계기가 있다는 점이다.
추격 사이클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술 패러다임 변화, 불황 등이 후발자에 ‘기회의 창’일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 변화나 불황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으로, 기회의 창은 늘 열리지만 모든 후발자가 기회를 붙잡는 건 아니란 메시지도 던진다. ‘준비된 후발자’만이 때가 찾아올 때 ‘비약(leapfrogging)’으로 선발자를 추월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또 다른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술변화나 불황과는 성격이 다른 외생적 요인이지만, 정부가 어떤 전략적 선택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일본을 추월할 준비가 돼 있는가?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놨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100대 전략품목 공급망을 1~5년 내 안정화한다는 목표로 국산화 및 수입처 다변화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공개적인 정책으로 ‘기회의 창’을 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탈(脫)일본이 곧 일본 추월인 것도 아닐 것이다. “추격만 해선 추월을 못 한다”는 명제도 있다. 일본이 걸어간 경로를 추종하는 국산화는 위험하다. 우리가 그 경로를 밟아나가는 동안 일본은 가만있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 산업이라도 주도권을 노리는 후발자는 독창적 방식을 동원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일본이 걸어간 기술경로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새 기술경로를 찾아내는 ‘창의적’ 국산화, 처음부터 글로벌 경쟁력을 노린 ‘확장적’ 국산화라야 추월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기업들이다. 이들이 바라는 게 ‘공개 전략(show strategy)’일지 ‘은밀 전략(covert strategy)’일지 정부는 생각해 보라.
정부의 전략적 선택은 소재·부품·장비에서만 요구되는 게 아닐 것이다. 역사는 신산업을 주도해 선발자로 나서는 또 다른 추월의 길도 알려주고 있다. ‘대항해 시대’ 서막을 연 스페인과 포르투갈, 무역으로 새 상업체제를 선보인 네덜란드, 산업혁명으로 제조업을 개척한 영국, 이후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쥐어온 미국 등이 다 그러했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등 기술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먼저 준비하는 쪽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새 게임이 시작된다고 보면 선발자라고 꼭 유리한 것도, 후발자라고 꼭 불리한 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선발자도 후발자도 동일 출발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산업에서도 한국은 일본을 추월할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당장 법과 제도, 규제에서 양국 기업이 같은 출발선에 있는지부터 그렇다. 일본에서는 되는데 한국에서는 안 되는 신산업 구도로 가면 추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추격을 시도했지만 추월에는 실패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추격만 하다 다른 추격자에게 추월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누군가에게 추월당한다는 것은 곧 추락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기회의 창으로 삼겠다면 치밀한 전략부터 세워야 한다. 후발자가 흥분해 선발자를 추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어리석다. 로드맵과 옵션을 다 보여주는 것은 더욱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이 직면한 당장의 위험을 덜어줄 슬기가 필요하다. 일본을 추월할 역량이 기업에서 나온다면 이들에 시간을 벌어줄 외교 해법도 마다해선 안 되는 게 정부다. 역사적으로 추월에 성공한 후발자는 선발자보다 더 냉정했다.
ahs@hankyung.com
추격 사이클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술 패러다임 변화, 불황 등이 후발자에 ‘기회의 창’일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 변화나 불황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으로, 기회의 창은 늘 열리지만 모든 후발자가 기회를 붙잡는 건 아니란 메시지도 던진다. ‘준비된 후발자’만이 때가 찾아올 때 ‘비약(leapfrogging)’으로 선발자를 추월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또 다른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술변화나 불황과는 성격이 다른 외생적 요인이지만, 정부가 어떤 전략적 선택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일본을 추월할 준비가 돼 있는가?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놨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100대 전략품목 공급망을 1~5년 내 안정화한다는 목표로 국산화 및 수입처 다변화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공개적인 정책으로 ‘기회의 창’을 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탈(脫)일본이 곧 일본 추월인 것도 아닐 것이다. “추격만 해선 추월을 못 한다”는 명제도 있다. 일본이 걸어간 경로를 추종하는 국산화는 위험하다. 우리가 그 경로를 밟아나가는 동안 일본은 가만있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 산업이라도 주도권을 노리는 후발자는 독창적 방식을 동원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일본이 걸어간 기술경로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새 기술경로를 찾아내는 ‘창의적’ 국산화, 처음부터 글로벌 경쟁력을 노린 ‘확장적’ 국산화라야 추월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기업들이다. 이들이 바라는 게 ‘공개 전략(show strategy)’일지 ‘은밀 전략(covert strategy)’일지 정부는 생각해 보라.
정부의 전략적 선택은 소재·부품·장비에서만 요구되는 게 아닐 것이다. 역사는 신산업을 주도해 선발자로 나서는 또 다른 추월의 길도 알려주고 있다. ‘대항해 시대’ 서막을 연 스페인과 포르투갈, 무역으로 새 상업체제를 선보인 네덜란드, 산업혁명으로 제조업을 개척한 영국, 이후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쥐어온 미국 등이 다 그러했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등 기술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먼저 준비하는 쪽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새 게임이 시작된다고 보면 선발자라고 꼭 유리한 것도, 후발자라고 꼭 불리한 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선발자도 후발자도 동일 출발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산업에서도 한국은 일본을 추월할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당장 법과 제도, 규제에서 양국 기업이 같은 출발선에 있는지부터 그렇다. 일본에서는 되는데 한국에서는 안 되는 신산업 구도로 가면 추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추격을 시도했지만 추월에는 실패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추격만 하다 다른 추격자에게 추월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누군가에게 추월당한다는 것은 곧 추락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기회의 창으로 삼겠다면 치밀한 전략부터 세워야 한다. 후발자가 흥분해 선발자를 추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어리석다. 로드맵과 옵션을 다 보여주는 것은 더욱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이 직면한 당장의 위험을 덜어줄 슬기가 필요하다. 일본을 추월할 역량이 기업에서 나온다면 이들에 시간을 벌어줄 외교 해법도 마다해선 안 되는 게 정부다. 역사적으로 추월에 성공한 후발자는 선발자보다 더 냉정했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