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광복절 울릉도편…"내 고향 북한특집, 상상만으로 눈물"
"전국노래자랑은 내 인생 교과서…105세 누님도 날더러 '오빠'라 해"
송해 "일본이 36년간 준 핍박,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어"
원조 국민 MC, 영원한 현역, 모두의 오빠….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상징이자 MC인 송해(본명 송복희·92)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약 30년간 매주 전국 팔도강산을 누빈 송해는 그중에 '오빠'라는 말이 여전히 가장 마음을 설레게 한다고 했다.

"양평에 갔을 때는 105세 된 누님도 나한테 오빠라고 했어. 나처럼 동생 많은 사람이 없다니까.오빠라고만 하면 그저 좋아."

곧 광복절을 앞두고 9년 만에 울릉도를 찾아 특집을 소화한 송해를 8일 종로구 낙원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뱃길 여정이 험했을 텐데, 오히려 에너지를 받아왔는지 역시 정정했다.

이야기보따리 역시 막힘이나 끊김이 없었다.
송해 "일본이 36년간 준 핍박,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어"
송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광복절 특집으로 울릉도를 찾은 데 대해 "감동이었고, 평생에 겪은 것을 다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라고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진 그의 역사는 곧 한국 근현대사였다.

"난 일제강점기도 겪었잖아. 내가 국민학생 땐 일본 기마병이 많았어요.그래서 마초(馬草)가 많이 필요했고, 우리는 공부보다도 마초 말려 보내느라 풀 베러 많이 다녔지. 내선일체,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 그런 세월을 보내고 광복이 와서, 온 민족이 '이제 우리 진짜 잘살아 보자' 했는데 바로 동족상잔이 일어났잖아. 그 바람에 나는 얼떨결에 남한으로 와서 혈혈단신이 됐고. 지금은 이렇게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지."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송해는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나 피난길에 가족과 헤어져 남한에 왔고, 창공 악극단으로 데뷔했다가 뛰어난 입담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으며 국민 MC가 됐다.

인생 자체가 드라마인 셈이다.

송해는 "이번에 자유롭게 많은 분 앞에서 노래하고 손뼉 치자니, 고향(북한)에도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이 나더라"며 "고향 특집은 상상만으로도 목이 멘다. '내 고향에 내가 왔습니다' 하고 나면 말을 잇지 못할 것 같다"라고 했다.

그는 북한에 여동생이 있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이 몇 차례 있었지만 닿지는 못했다.

그는 "고향에 가도 강산은 있겠지만 다른 건 다 변했을 거라는 말을 들으니 스스로 좀 작아지더라"며 "누이동생도 하나 있는데 나이가 아흔이 넘는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려 한다"라고 소망했다.
송해 "일본이 36년간 준 핍박,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어"
송해는 광복절 특집, 남북관계를 이야기하며 최근 긴박하고 험난한 국내외 정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구상에서 반 토막이 난 것도 우리 하나뿐이고, 지형적으로도 강대국들 사이에 바짝 끼어서 더더욱 어렵지. 강대국들이 힘을 쥐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눈치를 안 볼 수도 없고. 작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마음이 벅찼는데, 이후에 미국·중국과의 관계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어쨌든 민간인들은 자유롭게 만나고 서신 왕래도 좀 했으면 좋겠어."

그는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서는 "하루하루 급변하는 세상에서 일본은 부인할 수 없는 이웃이니 감정만 갖고 싸우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36년 긴 세월 우리에게 준 핍박은 무엇으로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천년을 풀어도 다 풀 수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송해 "일본이 36년간 준 핍박,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어"
송해는 이어 "울릉도 편을 통해 조국 독립, 남북통일 등의 진정한 의미가 전달되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광복절 특집에 저동초등학교 학생들과 독도 경비대도 참여했으며, 다양한 우리 노래를 선보여 객석 절반이 눈물바다였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국노래자랑'은 모든 편이 '화합의 장'이다.

송해 역시 "지역 갈등, 고부 갈등, 직업 간 갈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 성별과 세대 간 갈등이 '전국노래자랑'에서는 해소된다. 서로 손뼉을 쳐주고 용기를 얻는다"라며 "이 프로그램은 '내 인생의 교과서'"라고 말했다.

어느덧 내년이면 40주년을 맞는 '전국노래자랑'이다.

송해는 "40년의 역사를 화면으로 보여드리면서 진행하고 싶다. 더우나 추우나 몇백리를 와서 노래해주고 손뼉 쳐주는 분들께 보상하고 싶다"라고 인사했다.

'전국노래자랑'이 40주년, 50주년을 맞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송해의 건강이다.

일요일 낮이면 늘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우리는 매주 '전국노래자랑'을 보며 국민 MC의 건강을 확인하고, 또 안심한다.

가끔 감기를 앓아도 하루 이틀이면 털고 일어난다는 송해는 "나는 잡식가이고, 운동도 열심히는 안 한다. 적당히 술 먹고 여행을 열심히 다닌다. 또 세 끼는 꼭 제때 챙겨 먹는다"라며 "피곤해도 바짝 정신 차리고 '전국노래자랑 해야지' 생각한다. 뭘 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건강해질 수 있다"라고 했다.

애주가로 유명한 그는 "술에 지면 나쁜 거지만 지지 않으면 그게 보약이다. 북쪽에서 소주를 많이 먹기 때문에 지금도 소주밖에 못 먹는다"라고 웃었다.
송해 "일본이 36년간 준 핍박,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어"
송해는 지난해 배우자 석옥이 씨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는 빈소에서 취재진에 "가고 싶어도 같이 못 가는 게 인생이다. 곧 따라갈 테니 기다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반쪽이 떨어져 나간 고통이었겠다"는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송해는 "세월이 흐를수록 일심동체가 됐다. 아내가 먼저 가면 그 순간부터 초라해지는 게 남자다. 집에 돌아오면 인사하는 사람도 없고, 나갈 때 잘 가라는 사람도 없으니"라고 아픈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갈수록 빈자리가 늘어난다"라며 "어디 가서 맛있는 걸 먹어도 '집사람이 이것 참 좋아했는데 어떻게 나 혼자 먹지' 생각이 들고 그렇다"라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그는 오늘도 아픈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전국노래자랑'을 위해 달린다.

그는 "힘들 때가 있어도 '즐거운 비명'"이라고 했다.

"남은 인생,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즐기며 살겠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