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일본이 '지소미아 폐기' 진짜 두려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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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에 맞서 ‘지소미아 폐기’를 검토하고 있지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는 일본이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이란 게 배경입니다. 일본이 우리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를 겨냥했듯 우리도 지소미아를 일본의 ‘급소’로 쓰겠다는 것이죠.
대통령의 ‘복심’인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백색국가 배제를 결정한 일본과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지속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는 24일이 지소미아 연장 시점이기 때문에 그 전에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했지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역시 “상호 모순된 입장을 유지하는 국가와 민감한 군사 정보를 교환하는 게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은 전혀 상반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진보 쪽은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지소미아를 즉각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보수 쪽은 “지소미아는 한국 안보에 더 필요한 장치”라고 강조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20년 이상 동북아시아 정치·안보·외교를 연구해온 전문가 A씨는 “지소미아 폐기는 일본의 급소가 아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도쿄대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정치적으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입니다.
A씨는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선,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게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일본이 지소미아 폐기를 두려워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아베 신조 총리는 내심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하길 바랄 수 있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가 깨지면 남은 건 더욱 단단한 미·일 동맹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소미아 파기를 통해 아베 총리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평화헌법 개정 및 군사 대국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A씨는 “아베 총리가 한국을 겨냥한 데에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경시한 채 중국을 우선시했다는 불만과 불신이 깔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이 ‘지소미아 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계속 풍기는 건, 한국보다는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죠.
한일 양국은 2016년 지소미아를 체결했고 북한의 군사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해 왔습니다. 일본은 정보수집위성 5기,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등 한국과 비교해 압도적 정보 자산을 운용하고 있지요. 수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실험 때도 한국은 일본 정보 자산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보 해석 능력을 갖고 있고요.
미국으로선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중에서, 미·일 동맹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게 A씨의 견해입니다. 그는 “동맹에선 공통의 적을 누구로 보느냐가 핵심인데 한미 동맹은 북한, 미일 동맹은 중국을 위시한 동북아시아 전체”라며 “동맹의 태생 자체가 다른데다 미국 입장에선 일본과의 결합이 동아시아 전략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 편을 들어줄 것이란 판단은 순진한 생각이란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 발생했던 강제징용이 문제의 시발이고, 정치적으로 서로 물러설 수 없다는 점에서 한일 갈등의 해법이 요원하다고 봤습니다. A씨는 “일본 입장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 문제를) 양보할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군국주의 시대 피해국들에 대한 기존의 ‘전후처리’ 원칙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역시 진보 정권이냐 보수 정권이냐에 관계없이 역사인식 문제에 관한 한 기존의 대원칙에서 물러설 수 없다”고 했지요.
따라서 “당분간 외교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게 A씨의 얘기였습니다. 그는 “한일 관계가 최악인데도 미국이 나서지 않는 건, 중재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한일 정부가 상대방에게 특사를 보내봤자 해결하긴 어렵다”고 예상했습니다.
A씨는 “일본인들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중국에 역전당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면서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당시의 초조함을 되새기게 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본 역시 약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지소미아보다 오히려 경제”라고 강조했지요. ‘돈 풀기’ 위주의 아베노믹스가 조금씩 부작용을 드러내면서 일본 경제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죠. 한일 경제전쟁에 따른 피해는 한국이 더 많이 보겠지만 일본 역시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란 진단입니다.
첨예한 한일 갈등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A씨는 “(현재로선 가능성 정도이지만) 올해 말로 예상되는 일본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 집권당의 경우 아베 총리가 공천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는 구조인데, 선거 전략상 한일 대립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어찌 됐든 최소한 연말까지는 한일 간 대립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대통령의 ‘복심’인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백색국가 배제를 결정한 일본과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지속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는 24일이 지소미아 연장 시점이기 때문에 그 전에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했지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역시 “상호 모순된 입장을 유지하는 국가와 민감한 군사 정보를 교환하는 게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은 전혀 상반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진보 쪽은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지소미아를 즉각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보수 쪽은 “지소미아는 한국 안보에 더 필요한 장치”라고 강조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20년 이상 동북아시아 정치·안보·외교를 연구해온 전문가 A씨는 “지소미아 폐기는 일본의 급소가 아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도쿄대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정치적으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입니다.
A씨는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선,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게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일본이 지소미아 폐기를 두려워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아베 신조 총리는 내심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하길 바랄 수 있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가 깨지면 남은 건 더욱 단단한 미·일 동맹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소미아 파기를 통해 아베 총리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평화헌법 개정 및 군사 대국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A씨는 “아베 총리가 한국을 겨냥한 데에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경시한 채 중국을 우선시했다는 불만과 불신이 깔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이 ‘지소미아 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계속 풍기는 건, 한국보다는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죠.
한일 양국은 2016년 지소미아를 체결했고 북한의 군사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해 왔습니다. 일본은 정보수집위성 5기,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등 한국과 비교해 압도적 정보 자산을 운용하고 있지요. 수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실험 때도 한국은 일본 정보 자산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보 해석 능력을 갖고 있고요.
미국으로선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중에서, 미·일 동맹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게 A씨의 견해입니다. 그는 “동맹에선 공통의 적을 누구로 보느냐가 핵심인데 한미 동맹은 북한, 미일 동맹은 중국을 위시한 동북아시아 전체”라며 “동맹의 태생 자체가 다른데다 미국 입장에선 일본과의 결합이 동아시아 전략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 편을 들어줄 것이란 판단은 순진한 생각이란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 발생했던 강제징용이 문제의 시발이고, 정치적으로 서로 물러설 수 없다는 점에서 한일 갈등의 해법이 요원하다고 봤습니다. A씨는 “일본 입장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 문제를) 양보할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군국주의 시대 피해국들에 대한 기존의 ‘전후처리’ 원칙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역시 진보 정권이냐 보수 정권이냐에 관계없이 역사인식 문제에 관한 한 기존의 대원칙에서 물러설 수 없다”고 했지요.
따라서 “당분간 외교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게 A씨의 얘기였습니다. 그는 “한일 관계가 최악인데도 미국이 나서지 않는 건, 중재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한일 정부가 상대방에게 특사를 보내봤자 해결하긴 어렵다”고 예상했습니다.
A씨는 “일본인들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중국에 역전당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면서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당시의 초조함을 되새기게 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본 역시 약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지소미아보다 오히려 경제”라고 강조했지요. ‘돈 풀기’ 위주의 아베노믹스가 조금씩 부작용을 드러내면서 일본 경제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죠. 한일 경제전쟁에 따른 피해는 한국이 더 많이 보겠지만 일본 역시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란 진단입니다.
첨예한 한일 갈등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A씨는 “(현재로선 가능성 정도이지만) 올해 말로 예상되는 일본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 집권당의 경우 아베 총리가 공천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는 구조인데, 선거 전략상 한일 대립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어찌 됐든 최소한 연말까지는 한일 간 대립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