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3%로 끌어내렸다. 지난 6월 수출 부진 우려 등을 이유로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0%로 낮췄는데, 이번엔 내년 전망치마저 낮춘 것이다. 당초 하반기 회복될 것으로 봤던 수출이 계속 부진한 데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새로운 리스크로 부각된 데 따른 것이다.
피치의 경고…"韓, 재정건전성 관리 필요"
피치는 또 이례적으로 한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향후 신용등급 하락을 가져올 리스크로 ‘남북한 갈등’ 외에 ‘예기치 못한 대규모 공공부문 부채 증가’를 제시했다.

피치는 9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한다고 발표하며 한국 경제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AA-’는 상위 네 번째 등급이다. 피치는 한국의 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경제 성장 모멘텀이 둔화되고 있지만 근원적인 성장은 견실하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은 최근 대외 리스크가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피치는 “미·중 무역분쟁 심화와 일본과의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문제”라며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 조치가 공급망을 교란시키고 한국 기업의 소재 수입 능력에 불확실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무역갈등이 오래 지속되거나 한국 기업의 대체 공급업체 확보가 지연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고 봤다. 피치는 “올해는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 부진으로 성장률이 2.0%로 둔화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2.9%)이 낮은 수준으로 결정된 것은 단기적으로 기업 심리와 노동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피치는 올해 단기적인 재정 지출이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관리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지금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치는 “확장적 재정 기조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라며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재정 지출 압력에 대비해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치는 앞으로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는 리스크 요인으로 예기치 못한 대규모 공공부문 부채 증가를 급격한 한반도 긴장 악화에 이어 두 번째로 꼽았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대부분 글로벌 신평사와 해외기관들이 지난달 불거진 일본의 수출규제를 한국 성장률 전망치에 반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피치를 시작으로 다른 기관들도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