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늦어지고 퇴근 빨라졌다
광화문·시청 등 서울 도심권
오후 6시대 퇴근 비중 43%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확산되면서 요즘 직장인의 생활은 10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출근시간은 늦어지고, 퇴근시간은 빨라졌다. 여유 시간이 늘어난 만큼 취미도 훨씬 다양해졌다.
광화문·시청 일대선 6시 퇴근이 대세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12일 발간한 ‘서울시 직장인의 출퇴근 트렌드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직장인의 저녁 7시 이전 퇴근 비중은 10년 전보다 눈에 띄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2008년 약 29억 건, 지난해 약 31억 건에 달하는 시간대별 지하철 승하차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의 퇴근자를 100%로 놓고 비중을 따졌을 때, 지난해 광화문·을지로·시청 등 도심권에선 오후 6시대 퇴근자 비중이 42.8%로 가장 높았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직장인이 오후 6시면 회사 문을 나섰다는 얘기다. 2008년(36.0%)에 비해선 6.8%포인트 높아졌다. 오후 5시대 퇴근 비중도 같은 기간 18.1%에서 지난해 20.0%로 늘어났다. 반면 오후 7시대(20.8%)와 오후 8시대(16.4%)는 10년 전보다 각각 5.0%포인트, 3.7%포인트 줄었다.
출근시간이 10년 전보다 늦어진 경향도 나타났다. 정보기술(IT) 기업이 몰려 있는 강남·역삼·선릉 등 동남권 지역은 다른 권역에 비해 오전 9시대 출근 비중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지역은 오전 6~8시대 출근 비중이 낮아진 대신 오전 9시대는 2008년(28.9%)보다 5.8%포인트 늘어난 34.7%를 기록했다.
서울 주요 업무지구의 오후 11~12시 심야시간대 택시 호출도 크게 감소했다. 종로구, 서초구, 영등포구, 금천구 등이 심야시간대 택시 이용이 줄어든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혔다. 연구소는 “정시 퇴근이 늘고 야근과 회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 ‘베드타운’은 까치산역
서울시 지하철역 전체를 통틀어 출근시간대 하차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을지로입구역(94.0%)으로 나타났다. 승·하차 승객이 100명이라고 하면 94명이 내리고, 6명이 탔다는 얘기다. 그다음으로는 종각역, 국회의사당역, 시청역, 광화문역 등이 차례로 하차 비중이 높았다.
연구소는 오전 6~9시 지하철 승차 비중이 높은 곳을 ‘베드타운’, 하차 비중이 높은 곳을 ‘오피스타운’으로 분석한 결과도 제시했다. 까치산역이 이 시간대 승차 비중 88%로 가장 높아 대표적 베드타운으로 꼽혔다. 연구소는 “광화문, 여의도, 강남 등 서울 중심부에 오피스타운이 밀집해 있고 화곡동(까치산역) 상계동(마들역) 등 서울 서부, 동북부 경계 주변에 베드타운이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년 새 출근시간대 하차 승객 수(월평균)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도 바뀌었다. 2008년 1위였던 강남역이 5위로 밀려나고, 가산디지털단지역이 새로 1위에 올랐다. 선릉역은 2008년과 2018년 모두 2위 자리를 지켰다.
강남역은 퇴근시간 하차 지역 1위(승객 수 기준)에서도 밀려났다. 2008년 1위였던 강남역의 순위는 지난해 6위로 다섯 계단 떨어졌다. 지난해 퇴근시간 하차 지역 1위는 2008년 3위였던 잠실역이 차지했다.
취미 1순위 자리 빼앗긴 등산
전국적으로 ‘이른 퇴근’이 자리를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구소는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인용해 지난해 직장인(정규직)의 월 근무시간이 169.7시간으로 10년 새 가장 적었다고 설명했다. 2008년(189.5시간)에 비해 20시간가량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전국 직장인의 하루 평균 여가시간은 약 3시간으로, 2008년보다 48분가량 증가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취미의 종류도 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직장인 461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취미생활 1위로 인터넷 검색·채팅·1인미디어(54.1%)가 꼽혔다. 2, 3위는 게임(19.6%)과 쇼핑·외식(5.2%)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직장인 취미생활 1위였던 등산은 2.5%로 7위에 그쳤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7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의 영향이 크다고 연구소는 진단했다. 연구소는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는 인식이 많다”면서도 “다만 초과근무수당이 줄어들고 여가 관련 지출이 늘어난 탓에 전반적인 소득이 줄어드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