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투, 550만유로 송금
국내 거액 자산가들이 유럽 유명 벤처캐피털(VC)인 독일 얼리버드벤처캐피털에 직접 투자했다. 개인이 재간접펀드(펀드에 투자하는 펀드)를 통하지 않고 유럽 VC에 투자한 건 처음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나금융투자의 개인자산관리(WM) 부문인 클럽원센터는 얼리버드벤처캐피털에 투자 기회를 얻어 지난 5월부터 영업점 창구를 통해 총 550만유로(약 75억원)가량을 유치했다.
투자자들은 적게는 수십만유로에서 많게는 수백만유로 규모로 캐피털콜 방식의 투자약정을 맺고 투자금을 신탁했다. 캐피털콜이란 정해진 한도 내에서 자금 수요가 있을 때마다 돈을 넣는 방식이다. 오는 9월부터 회사의 요청이 오면 투자자들이 직접 약정한 돈을 송금하게 된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주로 재간접펀드를 통해 해외 VC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VC에 직접 투자한 선례는 있지만 개인들이 직접 유럽 VC에 돈을 넣은 것은 처음이다.
얼리버드벤처캐피털은 독일 베를린에서 1997년 설립돼 현재 10억유로(약 1조3600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투자한 기업 가운데 7곳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했고, 24곳은 인수합병(M&A) 또는 지분 매각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투자한 기업 가운데 핀테크(금융기술) 업체 N26이 최근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유럽투자기금(EIF)과 아부다비투자청(ADIA)을 비롯해 유럽 다임러와 아우디 패밀리오피스 등이 얼리버드벤처캐피털에 투자하고 있다.
자금 조달 창구를 다양화하려는 얼리버드벤처캐피털의 전략과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려는 국내 자산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벤처캐피털의 경우 투자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가운데 일부가 성공해도 펀드 수익률은 연 10%를 넘기기 어렵다고 알려졌다.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창업하는 국내 스타트업은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 기업가치가 더 크게 뛴다.
미국 벤처 투자에 비해서도 유럽 VC 투자가 이점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은 모험자본이 풍부해 스타트업 가치가 상당히 높아진 뒤에만 해외 투자자들에게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유럽 벤처기업엔 더 이른 단계에 투자할 수 있다.
이번 투자를 주선한 정영주 하나금융투자 클럽원센터 팀장은 “얼리버드벤처캐피털의 최근 수년간 내부수익률(IRR)은 연간 30%에 이른다”며 “평소 벤처 투자에 관심이 많은 개인사업가와 자산가들이 몰렸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