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지지 않겠다"던 對日 메시지 '톤 다운'…해법 제시 없어
전문가 "한일 입장차 좁혀지지 않았다…단기간 해결 어려워"
文대통령 "기꺼이 손잡겠다"…日에 대화 메시지 발신 주목
문재인 대통령이 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부당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본과의 대화 의지를 밝힘에 따라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갈등을 해소하는 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두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 것이라며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일본과 전면전 펼치기에 앞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데 방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에는 일본이 한국을, 열흘 뒤에는 한국이 일본을 자국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일갈등이 전면전 양상을 띠는 상황에서 대화 기조를 천명한 셈이다.

이날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서는 일본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노골적인 표현은 없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일본 각의 결정 직후 주재한 긴급 국무회의에서 했던 발언과 비교해보면 일본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누그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을 향해 "명백한 무역보복", "이기적 민폐행위"라며 날 선 비난을 쏟아냈고,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승리의 역사를 만들겠다"며 정면 대응 방침을 선포한 바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순화되고 보편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며 "일본과 강대강으로 부딪히기보다는 출구전략을 모색하겠다는 기조 전환이 읽힌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이 일본과 대화 기조 방침을 거듭 강조하기는 했지만 한일 갈등 국면을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구체적인 해법은 제시하지 않아 갑작스러운 분위기 반전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본의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밝힌 문 대통령의 대화·협력 의지는 국제사회 여론을 염두에 둔 정당성 확보 차원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한일갈등 해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며 "대화 채널을 유지하겠다는 뜻이지 양국 간 간극이 좁혀졌다고 볼 기미가 없어서 한일 갈등이 단기간에 풀리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달 21일께 중국 베이징(北京) 외곽에서 열리는 한일중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따로 만나 '해법'을 모색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일 외교당국은 현재 양자회담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성사된다면 양측은 이달 초 태국 방콕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만나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한 것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이후 약 3주 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다만, 양국 장관이 만나더라도 꼬일 대로 꼬일 한일 갈등을 풀기 어렵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 대화 채널이 언제나 열려있다는 입장을 일본에 밝혀왔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과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광복절 직후인 이달 16∼17일께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비공개로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다가 막판에 취소됐다.

애초 비공개로 추진하던 일정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고위채널 간 만남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한일 외교당국은 앞으로도 물밑에서 대화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