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다. 사실상 취학 전 어린이의 교육과 보육을 담당하는 유치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일반 학원으로 분류되고 있어서다. 지난해 말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사태 이후 일부 사립유치원이 영어유치원으로 전환할 정도로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지만 교육부는 올해부터 현황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 영어유치원은 교사의 자격, 시설 기준, 교과 내용, 비용 등의 규제를 받지 않아 학부모의 부담만 늘리고 부실 교육을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영어유치원은 사설학원”

500개 넘은 영어유치원…정부 관리 '사각지대'
15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영어유치원은 2016년 410곳에서 지난해 494곳으로 늘었다. 2년 만에 20.5% 증가했다. 지난해 말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사건 이후 영어유치원에 대한 인기가 치솟은 점을 감안하면 올해 상반기에는 500개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교육부는 올해 영어유치원이 몇 곳이나 늘어났는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영어유치원은 법령상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어유치원으로 알려진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정식 유치원이 아니다. 유아를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사설학원일 뿐이다. 교육당국은 편의상 영어학원 중 유아를 대상으로 하루 3시간 이상 교습하는 학원인 ‘반일제 이상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영어유치원으로 파악해왔다. 교육부 관계자는 “영어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의해 정식으로 설립된 학교가 아니라 영어학원의 한 종류”라며 “운영 현황을 매년 파악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교습비 제한도 안 받아

500개 넘은 영어유치원…정부 관리 '사각지대'
그러나 유아 대상 영어학원들은 정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정식 유치원 행세를 하고 있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정식 유치원이 아니기 때문에 학원 이름에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선 안 된다. 하지만 학원들은 키워드 광고를 통해 학부모를 현혹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영어유치원을 검색하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연결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학부모 사이에서도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영유’로 불리며 정식 유치원과 동일 선상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회계비리 문제가 터진 뒤 일부 사립유치원은 유치원 간판을 내리고 유아 대상 영어학원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영어유치원은 정식 유치원과 달리 교습비 인상 제한도 없다. 영어유치원 평균 교습비는 2016년 52만2000원에서 지난해 88만4000원으로 69.3% 급증했다. 급식비와 피복비, 차량비 등을 포함한 실질 수강료는 1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영어유치원은 한 달 수강료가 2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유치원에서 근무하는 교사 수준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영어유치원 교사 자격 기준은 일반 학원과 같다. 전문대 졸업 또는 4년제 대학 3학년 이상 학생이면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다. 유치원 정교사, 보육교사 자격증이 필요 없다. 실제로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영어 능통자면 누구나 영어유치원 교사로 일할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교육계에서는 “학부모들이 영어유치원이 유아교육을 대체한다고 인식하는 만큼 영어유치원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일정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