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산 오르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그것도 암벽 등반.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오르고 또 올랐다. 대학에선 연극에 푹 빠져들었다. 시대의 아픔을 무대에서 그려내고 관객과 나누는 것이 마냥 좋았다. 이후에도 뭔가에 도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영화, 뮤지컬, 벤처캐피털업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새 영역을 개척했다. 지난 3월 64세의 나이에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국내 최대 복합예술센터인 서울 예술의전당을 이끄는 역할이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취임 5개월을 맞은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사진)을 전당 내 서울서예박물관 1층에 있는 한식당 ‘담’에서 만났다. 유 사장은 “원래 제가 뭔가에 한번 빠지면 미친듯이 몰두하는 성격”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전시·공연장 규모가 크고 클래식 오페라 미술 등 낯선 분야가 많지만 문화예술계에서 40여 년간 쌓은 내공 덕분에 관객들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연극으로 이겨낸 시대의 무게

유 사장은 1주일에 평균 3~4회 이곳에서 식사한다. “건강을 생각해 한식을 가급적 챙겨 먹으려 하는데 여기 음식 맛도 좋아 자주 옵니다. 손님을 대접할 때도 직접 메뉴를 고르게 되면 꼭 담으로 데려와요.”

‘담 한상차림’이 가득 차려졌다. 노릇노릇한 고등어구이, 바싹 구워진 불고기, 먹음직스러운 보쌈, 매콤한 주꾸미볶음이 차례로 나왔다. 유 사장은 보쌈을 싸 한입 가득 넣고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고향은 충북 제천이지만 태어난 지 100여 일 만에 온 가족이 함께 서울로 왔다. 혜화초, 경복중, 경복고를 다니며 줄곧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동숭동 인근에서 살았다. 당시 청춘들은 뜨겁고 강렬했다고 했다. 투철한 시대 정신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그가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엔 너무 어렸다. “그땐 뭔지도 잘 모르고 동네에서 최루탄이 터지면 ‘아, 향이 고소한데’ 그랬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등 역사적 순간들이 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거죠.”

7남매 중 여섯째인 그는 친형들을 곧잘 따랐다. 고등학교 때 산악반에 들어간 것도 형들을 따라서였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누구 앞에 서면 떨려서 말도 잘 못했죠. 형들처럼 산을 타며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산보다 그를 더 강하게 만든 건 고3 때 불어닥친 한 사건이었다. 큰형(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이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붙잡혀 갔다. 그가 다니던 골목 곳곳에 형의 수배 전단이 붙었다. “이후 형에게 사형 선고까지 내려졌어요. 집안이 풍비박산 났죠. 스스로 마음을 다지며 ‘자력갱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그는 공부에 매진해 서울대 제약학과에 진학했다.

문화예술에 눈뜨게 된 건 대학 2학년 때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다. 약대 연극반 ‘함춘극회’ 반장이 정기 공연을 앞두고 “배우가 없다”며 끌고 간 게 계기가 됐다. “형이 붙잡혔던 순간부터 저는 늘 ‘블랙리스트’였고 관찰 대상이었어요. 연극으로 동료, 관객들과 소통하며 숨막혔던 세상과 무거운 집안의 분위기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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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심리 읽은 게 성공 비결”

1978년 대학 4학년 때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연극’을 만들다가 시국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갔다. 때마침 8·15 특사로 풀려난 큰형이 그를 면회오기도 했다. 유 사장은 1년 동안 ‘독방’ 생활을 하면서 5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고전, 성경, 법정 스님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도 읽었어요. 각종 예술 서적도요. 연극영화과 근처엔 가본 적도 없지만 그 덕분에 나만의 예술이론과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출소 이후에도 그의 마음은 온통 연극에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는 생계를 위해 다국적 제약사 한국맥네일에 입사했다. 그러나 일하면서도 무대를 떠나지는 않았다. 낮엔 회사에 다니고, 밤엔 연극 활동을 했다. 그렇게 1년3개월을 살다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서 먹고살 수 있는지 한번 해보겠다. 그게 어려우면 다시 제약사에 들어가겠다.”

이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예술 행보가 시작됐다. 극단 연우무대 사무국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사무국장 등을 거쳐 1989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전문적인 기획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접하는 분야였지만, 낮엔 외화를 공부하고 밤엔 촬영 현장을 찾아가 영화 업무를 익혔다. 영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이야기’ ‘미스터 맘마’ 제작에 참여해 성공시켰다. 1993년 기획시대라는 제작사를 직접 차리고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 등 다양한 색채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후 대중화가 시작된 뮤지컬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2010년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교수, 2012년엔 서울시뮤지컬단장을 맡았다.

기획·제작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8년엔 국내 최초의 문화콘텐츠 벤처캐피털인 아시아문화기술투자를 설립해 투자 일도 했다. 2012년부터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대표를 맡아 운영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주요 동력을 꼽자면 연극을 하면서 ‘민중’을 가까이서 본 덕분인 것 같아요. 무조건 그들이 쉽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걸 반복하다 보니 대중의 심리를 읽게 됐죠.”

전당 재정자립도 ‘낮추는’ 파격 행보

그는 예술의전당 사장 취임과 동시에 파격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이전 사장들과 달리 “재정자립도를 낮추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예술의전당 재정자립도는 75%에 이른다. 공공성을 띤 기획 공연을 하기보다 대관, 임대사업, 주차료 등을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가지 전략을 내세웠다. 국고 지원을 더 받고, 민간 기업 후원 등으로 수입원을 다변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예산 447억원 중 국고지원금은 25%인 119억원에 불과했다. 유 사장은 “임기 3년 안에 국고보조율을 50%로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무작정 예술을 하니 돈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후원을 갑자기 늘리는 일은 쉽진 않다. 유 사장은 ‘십시일반’의 힘을 연신 강조했다. 우선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연회비 10만원을 내는 골드회원 10만 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골드회원은 일정 연회비를 내면 예술의전당의 공연·전시 혜택과 할인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유 사장은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내 ‘골드회원권 선물’을 권하고 있다. “2002년부터 명함을 받으면 일일이 저장해뒀는데 이메일 주소가 1만 개나 되더라고요. 이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내 10만 명을 모집하면 100억원의 돈을 모을 수 있을 거예요. 다가오는 추석이나 크리스마스에 골드회원권을 선물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겁니다. 하하.”

새로운 후원회도 결성할 계획이다. “많은 분이 대기업 오너들만 문화예술 후원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많은 중소기업과 벤처 2세대들이 예술 후원에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문화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경제 주체가 될 겁니다.”

예술의전당은 지난달 공공문화예술 기관 중 처음으로 콘텐츠전문 투자조합에도 출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성한 220억원 규모의 ‘일신 뉴코리안웨이브 3호 투자조합’에 1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재원은 예술의전당의 자체 공연·전시 제작 등에 사용된다. 특히 열악한 오페라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앞장설 생각이다. “내년에 창작 오페라 ‘춘향’을 자체 기획해 선보일 겁니다.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갖춰나간 것처럼 오페라도 수백 년 전 유럽의 스토리가 아니라 우리만의 이야기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된장찌개가 나왔다. 구수하면서도 얼큰한 찌개 국물과 함께 밥 공기를 비워나가던 그는 “예술의전당은 ‘내 예술 인생의 종착역’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에 어디로 갈까’ 생각하면 몸을 사리게 됩니다. 제가 이 나이에 또 어딜 가겠습니까? 그저 최선을 다해야죠. 누가 오더라도 지속될 수 있는, 실천적인 경영 모델을 꼭 만들어 보일 겁니다.”

■30년간 5000만명 찾은 국내 첫 복합센터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은 1988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복합예술센터다. 국내 최고 수준의 공연·전시장과 각종 휴식·놀이·식음료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난 30년간 전당을 찾은 관람객은 5000만 명에 달한다. 공연장으로는 오페라, 연극, 무용 등을 올리는 오페라하우스와 주로 클래식 공연을 선보이는 음악당이 있다. 세부적으로 오페라하우스엔 오페라극장, CJ 토월극장, 자유소극장이 들어서 있고, 음악당엔 콘서트홀, IBK챔버홀, 리사이틀홀이 있다. 전시장으로는 한가람미술관, 서울서예박물관이 있다. 서예전문 전시장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음악광장 등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관객과 인근 주민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약력

△1955년 충북 제천 출생
△1975년 서울 경복고 졸업
△1983년 서울대 제약학과 졸업
△1984~1985년 극단 연우무대 사무국장
△1987~1989년 예술극장 한마당 대표
△1993년 영화사 기획시대 대표
△2002년 한국문화사업포럼 공동대표
△2008년 아시아문화기술투자 공동대표
△2012~2014년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2012~2019년 3월 동양예술극장 대표
△2019년 3월~ 예술의전당 사장
[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인택 "공연 기획·영화 제작·문화 VC…끊임없이 새로운 장르 도전"
유인택 사장의 단골집 전당 내 유일한 한식당…직장인 '문화회식' 명소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1층에 있는 ‘담’은 2016년 문을 열었다. 전당 내 유일한 한식당이다. 한식을 즐겨 먹는 시니어 관객이 많이 찾는다. 최근 술자리 대신 공연을 보는 ‘문화회식’이 확산하면서 직장인 손님도 많아졌다. 이로 인해 다른 식당보다 단체 예약이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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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는 주요 요리에 각종 반찬을 함께 올리는 정식이다. 곤드레비빔밥 정식, 돌솥비빔밥 정식부터 주꾸미비빔 정식, 보쌈 정식, 고등어구이 정식, 돼지 숯불구이 정식, 떡갈비 정식, 바싹 불고기 정식, 보리굴비 정식까지 다양하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즐겨 먹는 ‘담 한상차림’은 이 정식의 주요 요리가 한상 가득 나오는 메뉴다. 보쌈, 불고기, 도토리묵무침 등은 단품으로도 먹을 수 있다.

커피 등 음료도 즐길 수 있다. 아메리카노, 라테, 유자차 등을 판다. 식사 후 카페 메뉴를 이용할 때는 할인된다. 1년 365일 중 추석, 설날 명절에만 쉰다. 평일, 주말 모두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한다. 쉬는 시간은 오후 4~5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