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북, 5개월째 "경기 부진"…역대 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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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갈등으로 불확실성 확대"
정부가 5개월 연속으로 ‘경기가 부진하다’는 진단을 내놨다. 2005년 3월 경기진단 보고서(그린북)를 처음 발표한 뒤 최장기간이다. 관련기사 A8면
정부는 16일 펴낸 ‘최근 경제동향 7월호’에서 “수출, 투자 등의 흐름이 부진한 모습”이라며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반도체업황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다섯 달 연속 ‘부진’이라는 표현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특히 연달아 터지는 대외 악재가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봤다. 정부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우리 수출과 제조업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기업 피해도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고 경기 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장·단기 국채금리가 역전돼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진 데 대해서는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 집행을 가속화하고,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경제활력 제고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생산·투자·소비 부진에 'R의 공포' 덮쳐…경기 침체 악순환 빠지나
우리 경제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린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간 연구소들은 고용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발 빠르게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필두로 한 국책연구기관들이 잇따라 하향 조정에 동참했다. 하반기 들어 정부와 한국은행도 성장률 전망치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지난 14일 미국에서 12년 만에 벌어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10년물 국채 금리가 2년물 금리를 밑도는 현상)은 ‘차원이 다른 위험 신호’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기획재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경기진단보고서(그린북)에 역대 최장 기간(5개월) 연속으로 ‘경기 부진’ 표현을 넣은 것도 이런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기재부는 “표현을 하나하나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좋은 실물경기 지표를 찾기가 어렵다”(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부진의 늪 빠진 실물경기
기재부가 16일 발표한 ‘7월 최근경제동향’에 따르면 최근 주요 실물 경제지표는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다. 지난 6월 전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7%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도 1.1% 줄어든 수치다. 설비투자는 0.4% 증가했지만 5월 설비투자가 7.1% 대폭 감소한 것에 따른 기저효과 때문이었다.
생산과 투자가 부진한 건 ‘경제 대들보’인 수출이 하락세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7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과 비교해 11.0% 감소하면서 8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자동차(21.6%) 수출은 늘었지만 반도체(-28.1%) 컴퓨터(-24.1%) 석유화학(-12.4%) 등 대부분 품목이 줄었다. 지역별로 보면 아세안(0.5%)과 유럽연합(0.3%)에서는 소폭 증가했지만 중국(-16.3%) 인도(-7.6%) 미국(-0.7%) 등 대부분 주요 시장에서 감소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도 22.1% 감소해 수출 감소세가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대외 악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내수 경기까지 꽁꽁 얼어붙는 모양새다. 지난 6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6% 줄었다. 가전제품 등 내구재, 의복 등 준내구재,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 등 모든 분야에서 소비가 줄어든 영향이다. 기재부는 보고서에서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이 각각 3.4%, 10.7% 줄어들었다”며 “다만 온라인 매출 확대와 중국인 관광객 증가는 긍정적”이라고 했다.
홍민석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는 건 사실이지만 꼭 부정적인 측면에만 경도될 필요는 없다”며 “정부는 시장상황을 살펴보면서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시계(視界) 제로…앞으로가 더 큰 문제”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우선 대외 악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기재부도 이날 그린북에서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와 함께 미·중 무역갈등 심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런 우려를 드러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자와 기업 심리도 더욱 위축되고 있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5.9로 전월보다 1.6포인트 떨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집계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도 같은 달 86.9로 전월 대비 3.1포인트 하락했다. 두 지표가 100을 웃돌면 향후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소비자 및 기업이 비관적으로 보는 쪽보다 많다는 의미다. 모두 연초 ‘반짝 상승’했다가 최근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미국 경제의 실물 경기 위축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외 여건뿐 아니라 국내 여건도 이전부터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융시장 악화가 실물시장을 위축시키고, 다시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정부는 16일 펴낸 ‘최근 경제동향 7월호’에서 “수출, 투자 등의 흐름이 부진한 모습”이라며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반도체업황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다섯 달 연속 ‘부진’이라는 표현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특히 연달아 터지는 대외 악재가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봤다. 정부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우리 수출과 제조업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기업 피해도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고 경기 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장·단기 국채금리가 역전돼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진 데 대해서는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 집행을 가속화하고,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경제활력 제고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생산·투자·소비 부진에 'R의 공포' 덮쳐…경기 침체 악순환 빠지나
우리 경제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린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간 연구소들은 고용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발 빠르게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필두로 한 국책연구기관들이 잇따라 하향 조정에 동참했다. 하반기 들어 정부와 한국은행도 성장률 전망치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지난 14일 미국에서 12년 만에 벌어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10년물 국채 금리가 2년물 금리를 밑도는 현상)은 ‘차원이 다른 위험 신호’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기획재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경기진단보고서(그린북)에 역대 최장 기간(5개월) 연속으로 ‘경기 부진’ 표현을 넣은 것도 이런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기재부는 “표현을 하나하나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좋은 실물경기 지표를 찾기가 어렵다”(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부진의 늪 빠진 실물경기
기재부가 16일 발표한 ‘7월 최근경제동향’에 따르면 최근 주요 실물 경제지표는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다. 지난 6월 전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7%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도 1.1% 줄어든 수치다. 설비투자는 0.4% 증가했지만 5월 설비투자가 7.1% 대폭 감소한 것에 따른 기저효과 때문이었다.
생산과 투자가 부진한 건 ‘경제 대들보’인 수출이 하락세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7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과 비교해 11.0% 감소하면서 8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자동차(21.6%) 수출은 늘었지만 반도체(-28.1%) 컴퓨터(-24.1%) 석유화학(-12.4%) 등 대부분 품목이 줄었다. 지역별로 보면 아세안(0.5%)과 유럽연합(0.3%)에서는 소폭 증가했지만 중국(-16.3%) 인도(-7.6%) 미국(-0.7%) 등 대부분 주요 시장에서 감소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도 22.1% 감소해 수출 감소세가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대외 악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내수 경기까지 꽁꽁 얼어붙는 모양새다. 지난 6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6% 줄었다. 가전제품 등 내구재, 의복 등 준내구재,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 등 모든 분야에서 소비가 줄어든 영향이다. 기재부는 보고서에서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이 각각 3.4%, 10.7% 줄어들었다”며 “다만 온라인 매출 확대와 중국인 관광객 증가는 긍정적”이라고 했다.
홍민석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는 건 사실이지만 꼭 부정적인 측면에만 경도될 필요는 없다”며 “정부는 시장상황을 살펴보면서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시계(視界) 제로…앞으로가 더 큰 문제”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우선 대외 악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기재부도 이날 그린북에서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와 함께 미·중 무역갈등 심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런 우려를 드러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자와 기업 심리도 더욱 위축되고 있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5.9로 전월보다 1.6포인트 떨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집계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도 같은 달 86.9로 전월 대비 3.1포인트 하락했다. 두 지표가 100을 웃돌면 향후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소비자 및 기업이 비관적으로 보는 쪽보다 많다는 의미다. 모두 연초 ‘반짝 상승’했다가 최근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미국 경제의 실물 경기 위축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외 여건뿐 아니라 국내 여건도 이전부터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융시장 악화가 실물시장을 위축시키고, 다시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