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코블렌츠 인근의 무엘하임-카엘리히 원전이 지난 9일 철거되는 모습. 이 원전은 1988년 가동 정지됐다. 사진=연합뉴스
독일 코블렌츠 인근의 무엘하임-카엘리히 원전이 지난 9일 철거되는 모습. 이 원전은 1988년 가동 정지됐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유일의 원자력발전소 운영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자국 내 원전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늦게 공시한 2019년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통해서지요. 한수원은 원전 운영회사이지만 대표적인 공기업 중 하나입니다. 새 정부가 2017년 출범 직후 공식화한 탈(脫)원전 정책에 반기를 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수원이 사업보고서에 명기한 부분은 <나. 회사의 현황>의 <(4) 시장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 등> 중에서 <3) 건설부문(해외)>에 나와 있습니다. “최근 신규 원전시장은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전통적인 원전 강국 외에 러시아와 중국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정부를 중심으로 국내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수주 경쟁력을 제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시한 뒤 바로 이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요건 강화 및 발주국의 기술적 요구사항 고도화로, 자국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고 안전하게 운영한 경험과 기술력이 수주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라고 했습니다.

해외에서 원전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먼저 자국(한국)에서 원전을 지속적으로 지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수원은 또 “원자력 발전은 낮은 탄소 배출량, 원재료 수급 안전성, 경제적인 발전 단가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며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원전 대국은 미래 에너지 안보와 온실가스 감축 등의 이유로 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신흥 경제국의 에너지 수요 증가로 인해 새로운 원전 도입국도 생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서술했습니다. ‘탈원전이 세계적 추세’라는 정부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 표현들입니다.

사실 한수원의 이런 ‘입장’은 이번 보고서에 처음 명기된 건 아닙니다. 작년 초에 나왔던 ‘2017년 보고서’부터 등장했지요. 탈원전(탈핵)이 정부의 국정 과제가 된 이후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전이던 2017년 초의 ‘2016년 사업보고서’엔 이런 내용을 담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 보고서엔 “지속적 전력수요 증가, 기후변화 협약 대응, 정부의 정책적 의지 등은 원자력 확대에 기회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르면 향후 원전 설비 비중을 29%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적었습니다. “향후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에너지원 확보 차원에서 적정 원전 비중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고요.

한수원은 당시 “신한울 3·4호기까지 준공되면 우리나라 전력 수요의 안정적 공급에 기여할 것이다. 고유 기술로 개발한 APR+(1500MW급) 노형으로 천지 1·2호기를 건설하면, 우리의 선진 기술을 세계 시장에 입증하게 돼 해외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수원은 “안전성 및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한 제4세대 원자로 개발 및 핵융합로 개발 등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썼는데, 지금은 모두 공염불이 됐습니다.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는 물론 4세대 원자로 개발 등이 백지화됐기 때문이지요.

국내 원자력 발전의 경쟁력은 한수원이 최근 공시한 보고서의 ‘전력 판매 단가’에서도 확인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원전의 평균 판매단가는 kWh당 55.88원이었습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159.37원)의 3분의 1, 수력 발전(113.46원/kWh)의 2분의 1에 불과합니다.

한수원이 긴 사업보고서의 중간쯤에 눈에 잘 띄지 않게 넣어놓은 ‘자국 원전 지속 건설의 중요성’ 언급.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는 한수원의 요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