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주식 팔아 美 주식 산다"…달러 표시 ELS·펀드 줄줄이 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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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자산에 몰리는 투자자
안전자산 선호에 달러 '쏠림'
안전자산 선호에 달러 '쏠림'
신한금융투자가 지난달 고액 자산가를 전담하는 PWM센터를 통해 내놓은 항공기 리스금융 달러화 사모펀드는 출시 3주 만에 3000만달러(약 363억원)어치가 다 팔렸다. 대만 중화항공 등의 항공기 리스 채권에 달러로 투자해 이자를 받는 상품이다. 최소 가입 금액이 50만달러(약 6억원)고, 만기 3년6개월 동안 중도 해지할 수 없지만 자산가 수십 명이 몰렸다. 김성진 신한PWM강남대로센터장은 “자산 일부를 달러로 보유하려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자산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증권사와 은행 일선 지점에선 달러 표시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증시에선 개인과 기관 가릴 것 없이 한국 주식을 팔아 미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일본의 경기 불황기에 ‘와타나베 부인’이 전성기를 누린 것처럼 외화 자산에 투자하려는 ‘김 여사’가 많아지고 있어서다. 달러 상품, 흥행 행진
달러 주가연계증권(ELS), 달러 부동산 펀드, 달러 신종자본증권, 달러 발행어음 등 달러 상품들은 나오자마자 완판 행진을 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 리테일파생상품부가 자사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발행한 외화 ELS 규모는 올 들어 519억원에 달했다. 작년 전체 발행액의 두 배가 넘었다. 서재연 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상무는 “요즘 투자자는 만기가 돼 원리금을 돌려받아도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다른 달러 상품에 투자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달러자산 선호는 증시에서도 대세다. 올 들어 개인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5조4277억원을 순매도했다. 자산운용사도 1조3402억원을 팔았다. 이 중 상당 부분이 해외 주식, 그 가운데서도 미국 주식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개인·기관이 순매수한 미국 주식은 14억1606만달러(약 1조7148억원)에 이른다.
펀드 시장에서도 그동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환헤지형보다 환노출형 펀드가 인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환헤지형 펀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AB미국그로스’ 펀드(설정액 3663억원)는 올 들어 786억원이 순유출됐다. 반면 환노출형인 ‘KB글로벌주식솔루션’ 펀드(145억원)에는 66억원이 새로 들어왔다. 지난 3월 출시된 ‘미래에셋달러우량중장기채권’ 펀드도 환노출형(538억원)에 환헤지형(199억원)의 두 배가 넘는 투자금이 몰렸다. “국내 시장에선 먹을 게 없다”
달러 자산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기대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S&P500지수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1.0% 올랐다.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연평균 1.4%에 머물렀다. 올해도 코스피지수가 5.6% 하락하는 동안 S&P500지수는 15.2% 상승했다. 김을규 미래에셋대우 글로벌주식컨설팅 본부장은 “국내 주식에 투자해선 본전도 건지기 힘들다는 투자자의 실망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대내외 환경이 불안한 것도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달러 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과의 외교 갈등, 북한의 도발 등까지 겹치면서 원화 자산 자체에 불안을 느끼는 자산가가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달러 가치는 세계 경제가 어려울수록 오르는 경향이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집계하는 무역가중 달러지수(무역 상대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7월부터 2009년 3월까지 20.3% 치솟았다. 미·중 무역분쟁이 불거진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도 10.4%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8.5% 올라(원화 가치 하락) 대만(2.3%), 싱가포르(1.6%), 말레이시아(1.0%) 등 아시아 신흥국 중 가장 취약한 모습이다. 그만큼 원화 자산의 상대 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자본 유출 우려도
기관 ‘큰손’들도 해외 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0.89%의 기금운용수익률을 기록한 국민연금은 해외자산 비중을 2018년 30.1%에서 2024년 50.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한 운용사 최고운용책임자(CIO)는 “채권이나 대체투자도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해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되는 가운데 내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외화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해외증권투자 등으로 외화가 빠져나가면서 해외자금 조달을 위한 은행 부문의 외채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임근호 기자 hiuneal@hankyung.com
달러 자산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증권사와 은행 일선 지점에선 달러 표시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증시에선 개인과 기관 가릴 것 없이 한국 주식을 팔아 미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일본의 경기 불황기에 ‘와타나베 부인’이 전성기를 누린 것처럼 외화 자산에 투자하려는 ‘김 여사’가 많아지고 있어서다. 달러 상품, 흥행 행진
달러 주가연계증권(ELS), 달러 부동산 펀드, 달러 신종자본증권, 달러 발행어음 등 달러 상품들은 나오자마자 완판 행진을 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 리테일파생상품부가 자사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발행한 외화 ELS 규모는 올 들어 519억원에 달했다. 작년 전체 발행액의 두 배가 넘었다. 서재연 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상무는 “요즘 투자자는 만기가 돼 원리금을 돌려받아도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다른 달러 상품에 투자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달러자산 선호는 증시에서도 대세다. 올 들어 개인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5조4277억원을 순매도했다. 자산운용사도 1조3402억원을 팔았다. 이 중 상당 부분이 해외 주식, 그 가운데서도 미국 주식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개인·기관이 순매수한 미국 주식은 14억1606만달러(약 1조7148억원)에 이른다.
펀드 시장에서도 그동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환헤지형보다 환노출형 펀드가 인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환헤지형 펀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AB미국그로스’ 펀드(설정액 3663억원)는 올 들어 786억원이 순유출됐다. 반면 환노출형인 ‘KB글로벌주식솔루션’ 펀드(145억원)에는 66억원이 새로 들어왔다. 지난 3월 출시된 ‘미래에셋달러우량중장기채권’ 펀드도 환노출형(538억원)에 환헤지형(199억원)의 두 배가 넘는 투자금이 몰렸다. “국내 시장에선 먹을 게 없다”
달러 자산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기대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S&P500지수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1.0% 올랐다.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연평균 1.4%에 머물렀다. 올해도 코스피지수가 5.6% 하락하는 동안 S&P500지수는 15.2% 상승했다. 김을규 미래에셋대우 글로벌주식컨설팅 본부장은 “국내 주식에 투자해선 본전도 건지기 힘들다는 투자자의 실망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대내외 환경이 불안한 것도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달러 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과의 외교 갈등, 북한의 도발 등까지 겹치면서 원화 자산 자체에 불안을 느끼는 자산가가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달러 가치는 세계 경제가 어려울수록 오르는 경향이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집계하는 무역가중 달러지수(무역 상대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7월부터 2009년 3월까지 20.3% 치솟았다. 미·중 무역분쟁이 불거진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도 10.4%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8.5% 올라(원화 가치 하락) 대만(2.3%), 싱가포르(1.6%), 말레이시아(1.0%) 등 아시아 신흥국 중 가장 취약한 모습이다. 그만큼 원화 자산의 상대 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자본 유출 우려도
기관 ‘큰손’들도 해외 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0.89%의 기금운용수익률을 기록한 국민연금은 해외자산 비중을 2018년 30.1%에서 2024년 50.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한 운용사 최고운용책임자(CIO)는 “채권이나 대체투자도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해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되는 가운데 내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외화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해외증권투자 등으로 외화가 빠져나가면서 해외자금 조달을 위한 은행 부문의 외채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임근호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