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명 시민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역사. 열차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모입자 등 유해먼지에다 외부에서 들어와 쌓이는 미세먼지까지 공기질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다.

1~8호선과 9호선 1단계 구간을 운행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수학의 힘을 빌려 공기 최적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수리연)는 최근 환기 공조시스템 이상 여부를 사전에 감지해 알려주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해 공사 측에 건넸다. 이 알고리즘은 서울 지하철 전 역사 공조기 모터 8000여 대에 연동될 예정이다. 수리연은 어떤 ‘수학적 마술’을 부린 걸까.
지난 6월 대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서 사흘간 열린 ‘2019년 상반기 산업수학 워크숍’에서 수학자들이 기업들이 의뢰한 경영 애로 문제를 서로 해결하겠다며 손을 들고 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제공
지난 6월 대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서 사흘간 열린 ‘2019년 상반기 산업수학 워크숍’에서 수학자들이 기업들이 의뢰한 경영 애로 문제를 서로 해결하겠다며 손을 들고 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제공
수학으로 미세먼지 잡는다

서울교통공사는 공조기에 이상이 생기면 평소와 다른 전류값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수리연에 전류값 데이터에 기반한 ‘고장예지’ 시스템을 개발해줄 것을 의뢰했다. 딥러닝의 힘을 빌리면 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수리연 연구진은 공조기와 모터를 연결하는 V벨트와 베어링이 공조기 정상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정 역의 평소 전류값과 V벨트 또는 베어링이 교체된 날짜를 전후한 전류값 데이터를 수집했다. 5호선 장한평역 한 대합실에서 공조기 베어링 교체 전 전류값 데이터(비정상값) 1215개와 교체 후(정상값) 1048개를 확보해 기계학습을 반복하도록 했다. 2·7호선 건대입구역은 2개 승강장의 공조기 V벨트 교체 전 전류값 743개와 교체 후 867개를 이용해 기계학습을 시켰다. 이런 과정만 1년여가 걸렸다. 알고리즘 설계는 딥러닝 기법인 CNN(컨볼루션신경망)을 활용했다.

수리연이 수학의 편미분을 이용해 개발한 고장예지 알고리즘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①A, B, C, D 네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각각 잰다. ②A, B, C 키를 입력하면 몸무게를 산출하는 AI를 만든다(D에 대한 정보는 없다). ③AI에 D의 키를 입력한다. ④그 결과 D의 몸무게를 맞히면 AI가 잘 만들어진 것이다.

지하철 공조기 고장예지는 성공적이었다. 김포공항 목동 마장 중곡 등 12개 지하철역 공조기에 이 AI를 적용한 결과 V벨트와 베어링 교체 시점을 판단하는 정확도가 평균 95%에 달했다. 수리연은 중소업체 디에이피와 협력해 역사 내 미세먼지 빅데이터를 분석, 환기시스템 최적 가동 시점을 판단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산업수학 워크숍’ 기업에 인기

지하철 공조기에 관한 입소문은 빨랐다. 현대엘리베이터·현대백화점, SK E&S 등 대기업부터 한국에스엠씨, 도레이첨단소재, 데이터세이브, 큐티티 등 중견·중소기업이 경영상 애로를 수학으로 해결해달라며 잇따라 수리연을 찾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말 점포 내 에스컬레이터 등의 고장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해달라고 했다. SK E&S의 계열사 부산도시가스는 월별 가스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 사용량 예측 기법을 주문했다.

기업체의 1 대 1 의뢰 외에 ‘수학 집단지성’으로 산업문제를 해결하는 시도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 수학 전문가 150여 명이 모여 2박3일간 난상토론을 한 뒤 후속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내놓는 수리연의 ‘산업수학 워크숍’이다.

도레이첨단소재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폐수 재활용 용도로 만든 나노필터 신제품의 ‘성능 검증’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제를 담당한 정준화 수리연 연구원은 “미분방정식을 이용해 최근 검증 모델을 완성했고 도레이첨단소재 측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수리연이 설계한 SW로 ‘성능검증 필증’을 부착해 신제품 필터를 고객(공장)에 판매하게 된다.

데이터 복구기술 국산화 시동

항공우주연구원은 ‘가벼운 위성 제조법’을 수학에서 찾고 있다. 저궤도 위성은 우주의 원자산소(ATOX)에 의해 부식되기 때문에 이를 견딜 수 있게 설계한다. 그동안엔 ‘최악’의 우주 환경을 감안해 무차별적 고분자 코팅을 했고, 이는 위성 제작 비용 및 무게 증가로 이어졌다.

수리연은 태양활동지수, 지구 자기활동, 궤도정보 등을 변수로 원자산소 부식도를 예측하는 수학 모델을 개발해 저궤도 위성의 최적 무게를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USB 등 낸드플래시 메모리 내 손상된 데이터 복구기술을 자체 개발하려는 중소기업 데이터세이브도 수리연과 협업 중이다. 김태원 데이터세이브 대표는 “그동안 복구장비와 SW를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해 기술 유출이 불가피했다”며 “수리연과의 협업으로 국산화의 첫걸음을 뗐다”고 말했다.

대전=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