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멈추고 사업 팔고…'벼랑 끝 상장사'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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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중단 공시 지난해의 2배
영업 양도·자산 처분도 급증
영업 양도·자산 처분도 급증
올 들어 7월까지 공장 가동을 멈춘 상장사가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이 나빠진 사업부와 자산을 매각한 상장사도 급증하고 있다. 국내외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만큼 경영난에 빠지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7월 경영난으로 인한 생산 중단(파업·산업재해 사유 제외)을 공시한 상장사는 9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4개)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작년에는 연간으로도 다섯 곳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사업부 매각(영업 양도)과 토지·건물 등 유형자산 매각을 공시한 상장사(내부거래 제외)도 작년(10개)보다 두 배 많은 20곳에 달했다.
쌍용자동차는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늘자 지난달 평택공장 가동을 닷새간 멈췄다. 이 회사가 실적 악화를 이유로 공장을 멈춰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철강 제조사 썬텍은 지난 4월 전기·가스 공급이 끊겨 강제로 생산을 중단해야만 했다. 자금난으로 요금을 못 낸 탓이다. LG전자는 6월부터 평택 스마트폰 공장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산공장 LCD(액정표시장치) 생산라인 일부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별도 공장이 없는 정보서비스, 운송, 의약품 도매 등 서비스업체들은 영업 양도와 유형자산 매각 등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시작된 위기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둔화·수익성 악화·中 추격…상장사마저 "출구가 없다"
국내 가전·전기용 냉매밸브 시장의 99%를 차지하는 강소기업 에스씨디가 생산중단 공시를 낸 건 지난 2월 말이었다. 이 회사 공장이 멈춰선 건 2000년 코스닥시장 상장 후 19년 만에 처음이었다.
생산중단 공시는 가동을 멈추는 시설의 생산액이 전체의 10% 이상일 때 한다. 에스씨디는 적자가 지속되는 에어컨용 모터라인 등을 세우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수요 감소와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비용 증가가 맞물리면서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0.2%나 줄어든 탓”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7월까지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사업부·자산을 정리한 상장사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두 배가량 늘었다. 그만큼 기업 경영환경이 나빠졌다는 걸 의미한다. 안 그래도 각종 규제와 높은 비용 탓에 국내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국내외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분쟁 등 악재가 더해지자 탄탄한 상장사들마저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생산중단 상장사 두 배 증가
경기가 나빠지면 대다수 기업의 지갑은 얇아진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일단 광고 마케팅 등 판매관리비부터 깎는다. 부족하면 연구개발(R&D) 비용 등 미래에 대비한 투자를 줄인다. 그래도 안 되면 구조조정해 보유자산을 팔거나 사업부서를 넘긴다. 생산중단은 마지막 수단이다. 막대한 고정비를 감안해도 생산하지 않는 게 더 이익일 때만 내릴 수 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7월까지 생산중단(파업·산업재해 등 사유 제외) 결정을 내린 상장사는 9개였다. 작년 같은 기간(4개)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법제공시팀장은 “생산중단 공시는 주가와 신용도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쉽게 내리지 않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영업양도와 유형자산처분(계열사 등 내부거래 제외)을 공시한 상장사도 20개로, 작년(10개)의 딱 두 배였다.
올해 1~7월 생산중단·영업양도·유형자산처분 공시를 낸 29개 상장사 중 62%(18개)는 코스닥에 비해 기업 규모가 크고 재무구조도 탄탄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테이프 제조업체 테이팩스는 지난달 일반 산업용 테이프를 제조하던 인천 부평공장 문을 닫았다. 중국 저가 제품의 공세를 못 이겨서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건 전국 산업단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국 1206개 산업단지의 지난 1분기 생산액(241조8450억원)은 전년 동기(261조2170억원)보다 7.4% 줄었다. 1분기 기준 전국 산단의 생산액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16년 이후 3년 만이다.
제조업 탈(脫)한국 줄 잇나
에스씨디는 이번에 생산중단한 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29%나 오른 여파로 수익성이 급격하게 나빠져서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공장 운영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회사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로 역수출하면 상당한 물류비가 들지만 낮은 인건비와 세제 인센티브 등을 감안한 전체 수익은 한국보다 낫다”고 전했다. 섬유업체 경방이 오는 31일부터 국내 공장 문을 모두 닫고 베트남에서 생산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제조업 붕괴가 한층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미국 등 강대국들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국내 제조업체에는 대형 악재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향후 부품 수입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덜미를 잡힌 업종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런 업종은 거의 예외 없이 생산중단으로 이어졌다. 조만간 충남 아산공장의 상당수 액정표시장치(LCD) 라인 가동을 멈추기로 한 삼성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투자·소비 심리를 살리기 위한 규제 개혁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제조업 부진이 심해지면 근로자 소득 감소,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민준/구은서 기자 morandol@hankyung.com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7월 경영난으로 인한 생산 중단(파업·산업재해 사유 제외)을 공시한 상장사는 9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4개)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작년에는 연간으로도 다섯 곳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사업부 매각(영업 양도)과 토지·건물 등 유형자산 매각을 공시한 상장사(내부거래 제외)도 작년(10개)보다 두 배 많은 20곳에 달했다.
쌍용자동차는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늘자 지난달 평택공장 가동을 닷새간 멈췄다. 이 회사가 실적 악화를 이유로 공장을 멈춰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철강 제조사 썬텍은 지난 4월 전기·가스 공급이 끊겨 강제로 생산을 중단해야만 했다. 자금난으로 요금을 못 낸 탓이다. LG전자는 6월부터 평택 스마트폰 공장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산공장 LCD(액정표시장치) 생산라인 일부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별도 공장이 없는 정보서비스, 운송, 의약품 도매 등 서비스업체들은 영업 양도와 유형자산 매각 등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시작된 위기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둔화·수익성 악화·中 추격…상장사마저 "출구가 없다"
국내 가전·전기용 냉매밸브 시장의 99%를 차지하는 강소기업 에스씨디가 생산중단 공시를 낸 건 지난 2월 말이었다. 이 회사 공장이 멈춰선 건 2000년 코스닥시장 상장 후 19년 만에 처음이었다.
생산중단 공시는 가동을 멈추는 시설의 생산액이 전체의 10% 이상일 때 한다. 에스씨디는 적자가 지속되는 에어컨용 모터라인 등을 세우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수요 감소와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비용 증가가 맞물리면서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0.2%나 줄어든 탓”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7월까지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사업부·자산을 정리한 상장사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두 배가량 늘었다. 그만큼 기업 경영환경이 나빠졌다는 걸 의미한다. 안 그래도 각종 규제와 높은 비용 탓에 국내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국내외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분쟁 등 악재가 더해지자 탄탄한 상장사들마저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생산중단 상장사 두 배 증가
경기가 나빠지면 대다수 기업의 지갑은 얇아진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일단 광고 마케팅 등 판매관리비부터 깎는다. 부족하면 연구개발(R&D) 비용 등 미래에 대비한 투자를 줄인다. 그래도 안 되면 구조조정해 보유자산을 팔거나 사업부서를 넘긴다. 생산중단은 마지막 수단이다. 막대한 고정비를 감안해도 생산하지 않는 게 더 이익일 때만 내릴 수 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7월까지 생산중단(파업·산업재해 등 사유 제외) 결정을 내린 상장사는 9개였다. 작년 같은 기간(4개)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법제공시팀장은 “생산중단 공시는 주가와 신용도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쉽게 내리지 않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영업양도와 유형자산처분(계열사 등 내부거래 제외)을 공시한 상장사도 20개로, 작년(10개)의 딱 두 배였다.
올해 1~7월 생산중단·영업양도·유형자산처분 공시를 낸 29개 상장사 중 62%(18개)는 코스닥에 비해 기업 규모가 크고 재무구조도 탄탄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테이프 제조업체 테이팩스는 지난달 일반 산업용 테이프를 제조하던 인천 부평공장 문을 닫았다. 중국 저가 제품의 공세를 못 이겨서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건 전국 산업단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국 1206개 산업단지의 지난 1분기 생산액(241조8450억원)은 전년 동기(261조2170억원)보다 7.4% 줄었다. 1분기 기준 전국 산단의 생산액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16년 이후 3년 만이다.
제조업 탈(脫)한국 줄 잇나
에스씨디는 이번에 생산중단한 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29%나 오른 여파로 수익성이 급격하게 나빠져서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공장 운영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회사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로 역수출하면 상당한 물류비가 들지만 낮은 인건비와 세제 인센티브 등을 감안한 전체 수익은 한국보다 낫다”고 전했다. 섬유업체 경방이 오는 31일부터 국내 공장 문을 모두 닫고 베트남에서 생산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제조업 붕괴가 한층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미국 등 강대국들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국내 제조업체에는 대형 악재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향후 부품 수입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덜미를 잡힌 업종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런 업종은 거의 예외 없이 생산중단으로 이어졌다. 조만간 충남 아산공장의 상당수 액정표시장치(LCD) 라인 가동을 멈추기로 한 삼성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투자·소비 심리를 살리기 위한 규제 개혁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제조업 부진이 심해지면 근로자 소득 감소,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민준/구은서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