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분쟁·日규제 '타개'…"글로벌가치사슬 재편, 기회로 삼아야"
"中부품 자급에 韓소재·장비 공급해야…10∼20년 미래 먹거리산업"


한국이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파고를 넘어 10∼20년 이상을 내다보고 중국의 부품 자급시장에 한국산 소재·장비를 공급하는 단계까지 염두에 둔 정부의 산업통상 전략이 마련됐다.

1년여전부터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GVC) 체계의 재편 흐름에 따라 국내 산업구조를 재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춰 작성되고 있는 정부의 이 전략보고서는 최근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한 소재·부품·장비 육성 대책에도 반영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내부적으로 작성한 '새로운 통상질서와 글로벌산업지도 변화' 보고서(요약본 A4용지 7쪽 분량)에서 최근의 GVC 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첨단소재와 장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국가전략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으로 제언했다.
"국산 대체 넘어 中공급 단계까지 가자" 정부, 미래 전략보고서
GVC는 기업활동(기획·자재조달·조립생산·마케팅)을 영역별로 나눠 전세계에서 가장 적합한 국가에 배치하는 국제 분업구조를 의미한다.

GVC가 활발해지면 국제교역 규모가 증가하며 GVC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도 결정된다.

산업부는 이 보고서에서 국제 통상환경이 4차산업혁명과 맞물린 GVC 체계 재편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다면서 이중 한국은 수출내 GVC 생산비중(62.1%)이 세계 4위일 정도로 변화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정책은 사실상 산업정책으로 제조업 가치사슬을 북미권역에 묶어두려 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국내, 일본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 독일은 유럽연합(EU) 지역에 권역별 가치사슬을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로써 지난 30년간 전세계에 걸쳐 구축돼 있던 GVC 체계가 북미, 중국, 유럽, 아세안의 4개 권역으로 빠르게 재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속에 중국의 부품·소재 산업 자급률 향상은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은 우리나라의 대(對) 중국 주력 수출제품인 철강, 석유화학에서 이미 자급 생산체제를 갖췄다고 평가되며, 이제는 반도체의 자급 준비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그동안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던 한국, 일본, 대만과 중국 간의 분업 협력구조가 깨지면서 무한경쟁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중국의 부품자급률이 높아질 때 한국이 소재와 장비를 공급하는 새로운 GVC를 형성해야 한다는데 보고서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이 부품 자급을 이루더라도 소재와 장비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야 하는 만큼 한국이 공급할 수 있도록 GVC 상에서 위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산 대체 넘어 中공급 단계까지 가자" 정부, 미래 전략보고서
보고서는 "과거 한국의 휴대전화,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가 일본을 제치고 승승장구할 때 수면 아래에서 일본이 소재·장비의 기술력을 무기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생태계를 좌지우지했다"면서 "우리의 조립·부품산업이 일본의 소재·장비를 공급받아 성장했듯이 우리도 중국에 대해 일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래야 앞으로 10∼20년 이상 한국 산업의 성장동력을 유지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어 "GVC 변화에 대한 대처는 우리에게 충분한 기술력이 있을 때 힘을 받는다"면서 "글로벌 기술 인수·합병(M&A)과 '개방 혁신(open innovation)'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기술 확보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소재·장비기업 육성을 위해서도 속도감 있는 기술 M&A가 가장 적합하다고 추천했다.

실제로 보고서의 이 같은 제언은 5일 발표된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 반영됐다.

보고서 작성은 지난해 6∼7월께 시작돼 그동안 산업연구원 등 정부 안팎의 전문가 그룹 협의를 통해 계속 업데이트돼 왔다.

이 전략보고서 작성 시작 1년이 돼가던 지난달 초 일본 반도체 3대 소재품목에 대한 수출규제가 겹치면서 소재·부품·장비 육성책이 더 힘을 받게 됐다.

보고서는 이밖에 "전기자동차, 스마트가전과 같은 새로운 산업은 아직 권역별 가치사슬이 형성돼 있지 않다"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GVC를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 경쟁의 무기이며 산업화 시대의 원유와 같은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기획·생산·마케팅과 같은 GVC상의 활동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보고서의 주저자로 소재부품 담당 국장을 거친 김용래 현 통상차관보는 "소재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일본 수출규제 극복 뿐 아니라 국제통상질서 변화 속에 우리 경제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