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겸재 정선 '망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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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신라 제19대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은 일본에 볼모로 있는 왕족 내물 이사금의 셋째 아들 미사흔을 구출했다. 하지만 자신은 체포돼 발바닥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죽었다. 박제상의 부인은 수릿재(지금의 치술령)에 올라가 높은 바위 위에서 멀리 일본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그대로 돌부처가 됐다. 그 바위를 뒷날 사람들이 ‘망부석(望夫石)’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망부석’은 멀리 떠난 남편을 아내가 기다리다 죽어 화석이 된 설화를 두툼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화면 가운데 우뚝 선 망부석은 마치 모자를 그린 것으로 착각할 만큼 그 형상이 중의적이다. 짙은 먹으로만 휘두른 정선의 필치에서 거친 속도감이 느껴진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듯한 망부석의 배경은 여백으로 처리해 광활한 공간감을 실었다. 아래로 자라난 날카로운 잡초와 원경의 낮은 구릉은 주제를 살리기 위해 단출하게 표현했다. 망부석을 전면에 두드러지게 배치하고, 실제 크기보다 크게 그린 겸재의 과장법이 잘 드러난다. 둥그런 필획을 여러 번 반복해 바위의 양감을 살리는 동시에 망부석 설화에 걸맞게 그린 재치도 돋보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망부석’은 멀리 떠난 남편을 아내가 기다리다 죽어 화석이 된 설화를 두툼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화면 가운데 우뚝 선 망부석은 마치 모자를 그린 것으로 착각할 만큼 그 형상이 중의적이다. 짙은 먹으로만 휘두른 정선의 필치에서 거친 속도감이 느껴진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듯한 망부석의 배경은 여백으로 처리해 광활한 공간감을 실었다. 아래로 자라난 날카로운 잡초와 원경의 낮은 구릉은 주제를 살리기 위해 단출하게 표현했다. 망부석을 전면에 두드러지게 배치하고, 실제 크기보다 크게 그린 겸재의 과장법이 잘 드러난다. 둥그런 필획을 여러 번 반복해 바위의 양감을 살리는 동시에 망부석 설화에 걸맞게 그린 재치도 돋보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