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연구 규제 결국 안 푼다…구호 그친 바이오 혁신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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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년 만에 약속 뒤집어
美·英은 연구 규제 거의 안해
美·英은 연구 규제 거의 안해
인간 배아 연구 규제를 풀기로 했던 정부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생명윤리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반대에 막혔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희귀 난치병 치료를 위해 배아 연구를 장려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일 “배아 연구 규제 완화 방안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했다”고 밝혔다. 생명윤리법에 따라 배아 연구 규제를 풀려면 생명윤리심의위에서 심의한 뒤 법을 바꿔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생명윤리심의위에서 배아 연구 규제 완화는 좀 더 지켜보자고 결론을 냈고 이후 연구용역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나왔다”며 “내부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영국 등은 배아를 활용한 기초연구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난치병 등을 해결하기 위한 유전자 기술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도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강화된 배아 연구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2년 전 내놨다. 하지만 시민단체 종교계 등의 반발에 부닥쳐 2년 만에 입장을 번복한 셈이 됐다. 서울대 의대 연구진은 세계 처음으로 이종 장기 이식치료 기반을 마련했지만 아직 환자 대상 연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바이오헬스 규제를 풀겠다고 한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고 말했다.
유전성질환 1만개 넘는데, 22개만 배아연구 허용…"바이오산업 크겠나"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4월 인간 배아를 활용한 유전자 편집 연구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탄생해 논란이 있은 뒤 나온 지침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유전자를 편집한 배아를 착상시키는 것만 금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유전자 치료 기술 개발이 위축돼선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2017년 인간 배아 연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미국과 영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바이오헬스 분야에서는 연구 윤리상 문제되는 것만 금지하고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네거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다르다. 대다수 법안이 포지티브 제도다. 배아연구 범위를 엄격히 규정한 생명윤리법도 마찬가지다. 법에서 허용하는 연구가 아니면 모두 금지한다. 업계에서 포지티브 방식의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가 새로운 기술 개발을 막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포지티브 규제 내버려둔 한국
현행 생명윤리법에 따라 국내에서는 수정관 아기 시술을 하고 남은 냉동배아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이마저도 다발경화증, 백혈병 등 22개 난치질환만 허용된다. 연구자가 이들 질환 치료제 개발 등을 위한 기초연구를 하려면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와 보건복지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혈우병과 같은 유전성 질환은 1만 개가 넘는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희귀 난치성 질환도 7000여 가지다. 신생아 1% 정도는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자·배아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연구 범위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기초연구 단계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가 막혀 있다”고 했다.
배아 연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생명 윤리를 해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연구 가능한 질환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질환을 정하는 기준이 모호한 데다 연구자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배아 연구 규제를 풀지 않기로 결정했다. 보고서를 통해 정책원은 “배아를 활용한 연구 자체가 적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때처럼 여성의 난자가 도구화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연구 건수가 적다고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새로운 기술은 영영 나오지 못할 것”이라며 “연구 가능한 질환 범위를 넓히더라도 임상승인을 받는 절차 등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난자가 도구화된다는 의견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전자 치료 연구 제한 등 이중규제
유전자 편집도 포지티브 규제에 막혀 있다. 유전자 편집은 질환의 원인 유전자만 골라낸 뒤 교정해 치료하는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유전자 치료 연구 범위를 규정한 생명윤리법에 따라 유전질환, 암, 에이즈 등 중증질환 연구만 할 수 있다. 이마저도 이전에 치료제가 없거나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월등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 등은 유전자 편집 연구를 폭넓게 허용한다. 이 때문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가진 국내 연구자들도 미국 등 해외에서 연구하고 있다. 2017년 8월 김진수 서울대 교수는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OHSU) 교수와 함께 유전자가위로 비후성 심근증을 치료하는 연구에 성공했다. 김 교수가 개발한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것이지만 해당 연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이뤄졌다.
이후 복지부는 2018년까지 생명윤리법을 바꿔 유전자 치료 연구를 할 수 있는 질환군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안 마련 절차가 미뤄져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김 소장은 “국내에서 유전자 편집 등의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하려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 평가를 거쳐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연구 윤리 등을 심사하기 때문에 생명윤리법으로 연구 범위를 정하는 것은 이중 규제”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일 “배아 연구 규제 완화 방안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했다”고 밝혔다. 생명윤리법에 따라 배아 연구 규제를 풀려면 생명윤리심의위에서 심의한 뒤 법을 바꿔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생명윤리심의위에서 배아 연구 규제 완화는 좀 더 지켜보자고 결론을 냈고 이후 연구용역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나왔다”며 “내부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영국 등은 배아를 활용한 기초연구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난치병 등을 해결하기 위한 유전자 기술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도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강화된 배아 연구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2년 전 내놨다. 하지만 시민단체 종교계 등의 반발에 부닥쳐 2년 만에 입장을 번복한 셈이 됐다. 서울대 의대 연구진은 세계 처음으로 이종 장기 이식치료 기반을 마련했지만 아직 환자 대상 연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바이오헬스 규제를 풀겠다고 한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고 말했다.
유전성질환 1만개 넘는데, 22개만 배아연구 허용…"바이오산업 크겠나"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4월 인간 배아를 활용한 유전자 편집 연구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탄생해 논란이 있은 뒤 나온 지침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유전자를 편집한 배아를 착상시키는 것만 금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유전자 치료 기술 개발이 위축돼선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2017년 인간 배아 연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미국과 영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바이오헬스 분야에서는 연구 윤리상 문제되는 것만 금지하고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네거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다르다. 대다수 법안이 포지티브 제도다. 배아연구 범위를 엄격히 규정한 생명윤리법도 마찬가지다. 법에서 허용하는 연구가 아니면 모두 금지한다. 업계에서 포지티브 방식의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가 새로운 기술 개발을 막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포지티브 규제 내버려둔 한국
현행 생명윤리법에 따라 국내에서는 수정관 아기 시술을 하고 남은 냉동배아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이마저도 다발경화증, 백혈병 등 22개 난치질환만 허용된다. 연구자가 이들 질환 치료제 개발 등을 위한 기초연구를 하려면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와 보건복지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혈우병과 같은 유전성 질환은 1만 개가 넘는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희귀 난치성 질환도 7000여 가지다. 신생아 1% 정도는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자·배아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연구 범위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기초연구 단계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가 막혀 있다”고 했다.
배아 연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생명 윤리를 해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연구 가능한 질환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질환을 정하는 기준이 모호한 데다 연구자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배아 연구 규제를 풀지 않기로 결정했다. 보고서를 통해 정책원은 “배아를 활용한 연구 자체가 적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때처럼 여성의 난자가 도구화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연구 건수가 적다고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새로운 기술은 영영 나오지 못할 것”이라며 “연구 가능한 질환 범위를 넓히더라도 임상승인을 받는 절차 등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난자가 도구화된다는 의견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전자 치료 연구 제한 등 이중규제
유전자 편집도 포지티브 규제에 막혀 있다. 유전자 편집은 질환의 원인 유전자만 골라낸 뒤 교정해 치료하는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유전자 치료 연구 범위를 규정한 생명윤리법에 따라 유전질환, 암, 에이즈 등 중증질환 연구만 할 수 있다. 이마저도 이전에 치료제가 없거나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월등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 등은 유전자 편집 연구를 폭넓게 허용한다. 이 때문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가진 국내 연구자들도 미국 등 해외에서 연구하고 있다. 2017년 8월 김진수 서울대 교수는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OHSU) 교수와 함께 유전자가위로 비후성 심근증을 치료하는 연구에 성공했다. 김 교수가 개발한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것이지만 해당 연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이뤄졌다.
이후 복지부는 2018년까지 생명윤리법을 바꿔 유전자 치료 연구를 할 수 있는 질환군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안 마련 절차가 미뤄져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김 소장은 “국내에서 유전자 편집 등의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하려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 평가를 거쳐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연구 윤리 등을 심사하기 때문에 생명윤리법으로 연구 범위를 정하는 것은 이중 규제”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