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결합상품 이면은 '옵션매도' 거래…"위험성, 극단에 있는 상품"
'수수료 장사' 위해 안전한 상품인 것처럼 포장…당국도 방치
은행권 DLS사태, 감독부재·도덕적해이가 빚은 '예고된 인재'
최근 수천억원대 추정 손실을 기록한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 사태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감독 부재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빚은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우리·하나은행이 판매했다가 원금손실로 문제가 된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은 상품의 기초자산이나 손익구조는 저마다 다르지만 '옵션 매도' 상품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옵션이란 사전에 정한 계약조건에 따라 일정 기간 내에 상품이나 유가증권 등의 특정자산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런 옵션은 파생금융상품 시장에서 적절한 가격(프리미엄)에 사고 팔리기도 한다.

옵션거래는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분야로 꼽히는데 이는 감독당국이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강도 높은 진입규제를 설정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개인투자자가 장내 옵션거래를 하려면 의무교육 20시간 및 모의거래 50시간을 이수하고 기본예탁금 3천만원을 거래소에 맡겨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면 '1단계' 거래자격이 주어지며 개인투자자는 이때부터 옵션 매수 거래를 할 수 있다.

옵션 매도 거래를 할 수 있는 '2단계' 자격은 1단계 거래 경험을 기본자격으로 갖추면서 파생상품 거래계좌를 개설한 지 1년이 지나야만 취득할 수 있다.

의무교육 10시간을 추가로 받고 기본예탁금도 2천만원 추가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개인의 옵션 매도 거래에 진입규제를 가장 까다롭게 둔 것은 거래 과정이 특별히 복잡하고 까다로워서라기보다는 거래에 수반되는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거래 진입장벽이 낮았을 때는 무분별한 옵션 매도 거래로 패가망신하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 지식이 상대적으로 많고 투기적 성향을 가진 파생금융상품 직접 투자자조차 옵션 매도 거래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금융당국이 아예 '위험경고' 규제장벽을 치고 개인의 시장 진입이 어렵도록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옵션 매도 거래가 은행 창구에서 금융상품으로 팔릴 때는 이런 진입장벽이 없다.

금융지식이 없는 금융소비자도 유의사항 관련 확인서류 등에 자필 서명 몇 차례만 하면 옵션 매도 거래를 한 것과 마찬가지인 파생결합상품을 쉽게 가입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판매 직원도 기초자산이 안전자산인 국채인 점 등을 내세워 해당 파생결합상품도 마치 안전한 상품인 것처럼 호도해 설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금리 연계 DLF의 경우에도 독일 국채가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워 직원이 가입을 유도했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한다.

수익률이 연 4%에 불과해 '고수익'과는 거리가 먼 이 상품은 안전하다고 기대한 소비자들이 주로 가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하게 비유할 때 100번의 거래 중 99번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이익을 지속해 얻다 보니 소비자나 판매자 모두 '안전한 상품'이라고 잘못 인식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1번의 거래가 99번의 거래에서 얻은 수익은 물론 전체 투자금을 잃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파생결합상품의 위험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금리연계 상품의 경우 파생결합상품 중에서도 위험성이 더 큰 상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리는 다른 자산군과 달리 하락세가 한 번 정해지면 반등 없이 방향성이 오랜 기간 지속하는 특성이 있어 한 번 손실 구간에 진입하면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잡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더 '고수'의 영역이라는 의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연계 DLS는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위험성이 가장 극단에 있는 상품"이라며 "이런 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투기 성향을 가진 개인투자자의 옵션 거래는 강하게 규제하는데 정작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한 은행권의 파생결합상품 판매는 방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번 사태에 금융감독당국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적절한 규제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금융회사에서 '적절한 판매 권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은행 상품의 경우 독일 국채 금리가 3월 후반부 들어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하고 하향세를 지속했는데도 그 이후인 4∼5월까지 판매가 집중됐다.

기존에 유사한 상품을 취급하던 다른 은행들은 판매를 중단하던 시기였다.

이 상품은 판매금액 1천266억원 전액이 원금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소비자의 손실 가능성보다 '수수료 장사'에 치중한 금융사의 성과평가 구조가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했다고 비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대기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우리·하나은행과 달리 일부 다른 은행은 유사 상품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판매를 일찌감치 중단했다"며 "왜 은행에 따라 대응에 차이가 있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코(KIKO) 공동대책위는 19일 기자회견에서 "DLS 사태 역시 키코 사건의 연장선"이라며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 추구를 위해 은행들이 적극적이고 고의적으로 불완전 판매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