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S 사태' 키운 은행성과제 "무조건 많이 팔면 우수직원…터질게 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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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확산되는 불완전판매
美웰스파고 시스템 '판박이'
美웰스파고 시스템 '판박이'
“뭐가 근본적 문제인지 다들 알고 있잖아. 완전판매해서는 본부 할당 목표를 채울 수 없어.”
무더기 불완전판매 의혹을 받고 있는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 파문’과 관련해 시중은행 직원 A씨가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 남긴 글이다. 이 글에는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목표 할당부터 고쳐야 한다” “이번에 운좋게 빠져나간 은행도 방심하면 안 된다”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억대의 목돈을 날릴 처지가 된 DLS 투자자들은 은행 직원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일선 직원들은 불완전판매를 부추기는 ‘시스템’을 원망하고 있다. 고객만족도·수익률 뒷전인 이유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21일 “DLS를 권한 프라이빗뱅커(PB)조차 상품 구조를 완벽히 이해했을지 의심스럽다”며 “무조건 많이 팔아야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는 인사고과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DLS의 95.9%를 판매한 우리·KEB하나은행의 경우 PB 실적의 평가 기준인 핵심성과지표(KPI)에서 ‘고객 수익률’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KPI 항목은 수익성(평균 54.0%), 고객유치(19%), 여·수신 규모(13.9%) 등 단기 실적 위주로 짜여 있다. 회사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카드·펀드·보험 등을 몇 개 가입시켰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이 반영된 건전성(9.5%)과 고객보호(1.8%) 등은 배점이 낮다. 14개 은행 직원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은행원의 83.2%는 “영업점 성과평가 준비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들은 평가 방식이 적정하지 않은 이유로 목표치가 너무 높고(38.3%), 지나친 실적 경쟁을 유발(33.6%)하는 점을 많이 지적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의 2017년 설문조사에서도 은행원의 87%는 “고객 이익보다 은행 KPI 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대형사고 친 美은행 따라가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국내 은행의 실적 위주 KPI는 과당경쟁과 불완전판매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3년 전 미국 웰스파고은행에서 터진 ‘초대형 사고’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지목했다.
2016년 미국 시가총액 기준 1위 은행이던 웰스파고는 고객 동의 없이 예금계좌, 신용카드 등을 200만 건 이상 무단 발급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개인별 가입자 유치 실적을 매일 발표하고, 직원들을 극한 경쟁으로 내몰았던 KPI가 화근이었다. 새 은행장은 KPI를 ‘고객 중심’으로 완전히 뜯어고쳤다. 현재 웰스파고는 1인당 판매 할당량을 없애고, 고객의 만족도·충성도 등을 중심으로 직원을 평가하고 있다. 독일 도이치뱅크, 벨기에 포티스 등 해외 대형 은행들도 ‘고객과의 관계 강화’에 중점을 두고 KPI를 개선한 모범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부터 서울지역 PB센터 두 곳의 PB 평가에서 고객 수익률 비중을 10%에서 30%로 높였다. 현재 시범 운영 중으로 내년부터 전 지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등은 DLS 파문이 커지자 KPI 개선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불완전판매 공시 의무 없는 은행
보험사는 보험업 감독규정에 따라 업체별 불완전판매율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반면 은행은 예·적금, 대출 등 안전한 상품을 주로 취급한다는 이유로 공시 의무가 없다.
이런 가운데 금리연계 DLS 영업 과정에서 광범위한 불완전판매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정황은 계속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지상욱 의원에 따르면 KEB하나은행 DLS 가입자 중 40% 이상(612명)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파악됐다. 우리은행 DLS 가입자 일부는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고 들었고, ‘여기 사인하라’고 하길래 의심 없이 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연계 DLS는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위험성이 가장 극단에 있는 상품”이라며 “투기성향이 낮은 소비자를 상대로 한 은행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무더기 불완전판매 의혹을 받고 있는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 파문’과 관련해 시중은행 직원 A씨가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 남긴 글이다. 이 글에는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목표 할당부터 고쳐야 한다” “이번에 운좋게 빠져나간 은행도 방심하면 안 된다”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억대의 목돈을 날릴 처지가 된 DLS 투자자들은 은행 직원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일선 직원들은 불완전판매를 부추기는 ‘시스템’을 원망하고 있다. 고객만족도·수익률 뒷전인 이유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21일 “DLS를 권한 프라이빗뱅커(PB)조차 상품 구조를 완벽히 이해했을지 의심스럽다”며 “무조건 많이 팔아야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는 인사고과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DLS의 95.9%를 판매한 우리·KEB하나은행의 경우 PB 실적의 평가 기준인 핵심성과지표(KPI)에서 ‘고객 수익률’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KPI 항목은 수익성(평균 54.0%), 고객유치(19%), 여·수신 규모(13.9%) 등 단기 실적 위주로 짜여 있다. 회사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카드·펀드·보험 등을 몇 개 가입시켰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이 반영된 건전성(9.5%)과 고객보호(1.8%) 등은 배점이 낮다. 14개 은행 직원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은행원의 83.2%는 “영업점 성과평가 준비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들은 평가 방식이 적정하지 않은 이유로 목표치가 너무 높고(38.3%), 지나친 실적 경쟁을 유발(33.6%)하는 점을 많이 지적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의 2017년 설문조사에서도 은행원의 87%는 “고객 이익보다 은행 KPI 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대형사고 친 美은행 따라가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국내 은행의 실적 위주 KPI는 과당경쟁과 불완전판매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3년 전 미국 웰스파고은행에서 터진 ‘초대형 사고’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지목했다.
2016년 미국 시가총액 기준 1위 은행이던 웰스파고는 고객 동의 없이 예금계좌, 신용카드 등을 200만 건 이상 무단 발급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개인별 가입자 유치 실적을 매일 발표하고, 직원들을 극한 경쟁으로 내몰았던 KPI가 화근이었다. 새 은행장은 KPI를 ‘고객 중심’으로 완전히 뜯어고쳤다. 현재 웰스파고는 1인당 판매 할당량을 없애고, 고객의 만족도·충성도 등을 중심으로 직원을 평가하고 있다. 독일 도이치뱅크, 벨기에 포티스 등 해외 대형 은행들도 ‘고객과의 관계 강화’에 중점을 두고 KPI를 개선한 모범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부터 서울지역 PB센터 두 곳의 PB 평가에서 고객 수익률 비중을 10%에서 30%로 높였다. 현재 시범 운영 중으로 내년부터 전 지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등은 DLS 파문이 커지자 KPI 개선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불완전판매 공시 의무 없는 은행
보험사는 보험업 감독규정에 따라 업체별 불완전판매율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반면 은행은 예·적금, 대출 등 안전한 상품을 주로 취급한다는 이유로 공시 의무가 없다.
이런 가운데 금리연계 DLS 영업 과정에서 광범위한 불완전판매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정황은 계속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지상욱 의원에 따르면 KEB하나은행 DLS 가입자 중 40% 이상(612명)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파악됐다. 우리은행 DLS 가입자 일부는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고 들었고, ‘여기 사인하라’고 하길래 의심 없이 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연계 DLS는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위험성이 가장 극단에 있는 상품”이라며 “투기성향이 낮은 소비자를 상대로 한 은행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