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등에게 지급되는 ‘복지포인트’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퇴직금 및 각종 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 항목에 복지포인트를 포함시켜야 할지를 놓고 하급심 판단이 엇갈려온 가운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놓은 첫 ‘교통정리’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비슷한 소송 20여 건을 비롯해 전국 각급 법원에 걸려 있는 유사 사건 판단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매년 초 배정, 연내 사용 안 하면 소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물리치료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 등 근로자 548명이 회사를 상대로 “복지포인트도 통상임금에 포함해 2010~2013년 미지급한 수당을 달라”며 제기한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의료원은 2008년부터 직원들에게 근속연수에 따라 매년 복지포인트를 지급해왔다. 복지포인트는 주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등을 대상으로 근무연수,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선택적 복지제도다. 근로자들이 온라인 및 가맹업체에서 물품 또는 용역을 구입한 뒤 지방자치단체나 사측에 영수증을 제출해 상당액의 금원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대개 포인트당 1000원꼴이다. 한 해 전체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복지포인트 규모는 총 6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료원을 비롯한 대다수 공기업과 정부는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연장근로수당 등을 책정해왔다.

1·2심은 모두 복지포인트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모든 직원에게 균등히 일정 복지포인트를 배정했고, 직원들은 포인트로 자유롭게 물건 등을 구입했다”면서 “소정 근로의 대가이자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이라며 복지포인트를 일종의 임금으로 봤다. 2심도 “휴직자·퇴직자를 포함해 해당 연도에 근무한 모든 근로자에게 복지포인트를 지급했고, 사용 용도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의료원이 사전 설계한 복지 항목에 해당하는 업종에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8명의 다수의견으로 “복지포인트는 근로기준법상 임금 및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하급심 판단을 전면 뒤집었다. 재판부는 “통상적으로 복지포인트는 근로자의 근로 제공과 무관하게 매년 초 일괄적으로 배정된다”며 “1년 내 사용하지 않으면 이월되지 않고 소멸하며 양도 가능성도 없다”고 임금으로 보기 부적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 계류 中 유사 소송 20여 건

대법원은 복지포인트가 임금이 아니라는 인식이 노사 간 이미 공유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복지포인트는 여행, 건강관리, 문화생활, 자기계발 등으로 사용 용도가 제한돼 있다”며 “개별 사업장의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서 복지포인트를 보수 또는 임금으로 명시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포인트의 전제가 되는 선택적 복지제도는 근로복지기본법에서 정한 것”이라며 “선택적 복지제도는 근로자의 임금 상승이나 임금 보전을 위한 것이 아니고, 기업 내 복리후생제도와 관련해 근로자의 욕구를 반영한 새로운 기업복지체계를 구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주심인 김선수 대법관을 비롯해 박상옥 박정화 김상환 등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4명은 “복지포인트는 사용 용도에 다소 제한이 있지만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 직접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등 실질적으로 통화와 다를 바 없다”며 별도의 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번 판결은 유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복지포인트의 통상임금 인정 여부와 관련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사건은 근로복지공단, 서울주택도시공사 등 2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도시철도공사 사건에선 같은 사안을 놓고 1·2심 판단이 엇갈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앞으로 하급심에서 비슷한 사안을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