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척결’ 칼 빼든 베트남, ‘국격’ 높이기에 총력
내년 NU 안보리 비상임이사, 아세안 의장국
반부패법 이달 첫 시행, 베트남판 ‘김영란법’
공(公)과 관련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선물 못 받아
우리 기업들 “올 추석 선물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
뇌물 문화 없앨 신호탄 VS 용두사미로 끝날 것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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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뜨는 별’ 베트남이 ‘반부패’라는 대장정에 올랐다. 반부패법 ‘시행령59’가 이달 15일 발효되면서다. 베트남이 오랜 고질병을 고침으로써 부패지수 세계 117위(180개국 중, 2018년)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번에 시행된 반부패법은 지난해 11월20일 마련됐다. 올 7월1일에 ‘시행령59’가 나왔고, 약 한달 반의 계도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법령이 시행되는 셈이다. 새로 시행되는 반부패법은 2007년에 공표된 기존 ‘공무원의 선물 수수에 관한 규정’의 대체 법안으로 강도가 한층 세졌다. 예컨데 2007년 규정은 50만동(약 2만5000원) 미만의 선물 수수는 별도 신고없이 허용해왔다.

시행령의 적용 대상도 이번 법안이 훨씬 광범위하다. ‘직위, 권한을 가진 사람(Người có chức vụ, quyền hạn)’은 모두 이 법령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제 당국, 정당 등의 정치조직, 군대, 경찰, 국영기업, 공공 서비스 제공기관을 비롯해 기타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감독하고, 조금이라도 재정을 지원하는 조직에 근무하는 이들은 모두 해당된다.

반부패법은 우선 공공 기관의 투명성과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정부 기관 등 반부패법의 적용을 받는 기관은 기밀을 제외한 조직 구조 및 운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이해상충의 관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열거해놨다. 공직자가 임무 수행 중에 이해상충에 대해 인지했다면 이를 즉각 담당자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부패발생 시 담당자의 책임도 명시했다. 공무원들의 퇴직 후 민간 기업 취업에 대해서 엄격한 심사를 하도록 제도를 마련한 것도 주목할만한 조항이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조항은 ‘선물 규정’이다. 시행령 25조에 따르면 ‘법의 적용 대상자는 어떠한 형태로든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홍배 법무법인 율촌 하노이 소장은 “선물을 거절하지 못했을 경우 선물 받은 사람은 근무일 기준 5일내 자기 기관장과 직속 상관 등에 문서형태로 보고해야 한다”며 “보고를 할 때 선물을 준 사람의 이름과 직책, 주소, 기관명, 선물의 유형, 가격, 장소, 선물 받았을 때의 상황을, 관계 등의 내용이 포함돼도록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처벌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해당 기관이 부패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정도다. 베트남 법조계 관계자는 “반부패법 시행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며 “외국 기업들은 이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가 반부패의 칼을 공식적으로 뽑아들면서 향후 어떤 파장이 일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트남 진출 기업들은 사업의 성패와 관련된 일인 지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시범 케이스’에 걸릴 수 있어서다. 당장 다음달로 다가 온 추석 ‘선물 시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가 고민거리다. 베트남은 추석을 명절로 지내지는 않지만 한국 기준을 따라 추석에 선물을 주고 받는 게 관행이 됐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유지하려면 공무원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게 필수”라며 “경쟁사는 선물을 하는데 혹시 우리 회사만 법 지키다가 손해를 보는 것 아닌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노이 업계에선 ‘삼성전자는 추석 선물을 안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식의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16년 5월 응우옌 쑤언 푹 총리 취임 이래 줄곧 부패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공안은 6월 중순 빈푹성에서 수억 동 규모의 공무원 건설비리를 적발했다. 베트남 최대 그룹인 빈그룹도 친인척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다. 베트남 공안은 팜느엇부 AVG(Audio Visual Global) 전 회장이 민간 유료 TV서비스 업체인 AVG를 베트남 국영 이동통신사 모비폰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에게 수백억동의 뇌물을 준 혐의를 포착하고 그를 전격 구속하기도 했다.

법령만으로 그간의 오랜 관행이 일소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견해도 많다. 베트남은 올해와 내년에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당장 내년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자 아세안(ASEAN) 의장국을 맡는다. 2021년 지도부 교체에 앞서 베트남의 ‘국격’을 높이는데 매진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베트남은 바젤 II(기존의 은행 건전성 기준인 자기자본비율 (BIS)인 바젤1을 강화한 새로운 BIS협약)을 도입하기로 하고,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을 준수하기로 하는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베트남 전직 정부 관료는 “베트남 수출에서 외국인투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며 “베트남의 경제 성장을 위해선 외국의 투자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선물 문화’는 투자 유치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베트남 내 미국상공회의 관계자는 “베트남 투자에 관심 있는 미국 기업들은 굉장히 많다”면서도 “베트남이 투명성 측면에서 미국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세계투명성기구에 따르면 180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베트남의 부패지수는 2017년 107위에서 지난해에 117위로 추락했다. 인도(78위), 인도네시아(89위), 필리핀(99위), 태국(99위) 등 경쟁국과 비교해서도 한참 뒤쳐진 것으로 평가됐다.

박동휘=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