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으로 또 다른 친구 등 돌릴 수도
평화·지역안정 명분 따라 정도 걸어야
이희수 < 한양대 특훈교수·중동학 >
1991년 걸프전쟁 때는 소규모 국군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한국군의 본격적인 중동 파병은 2004년 이라크전쟁 때였다. 3600여 명 규모의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4년10개월간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다. 당시에도 파병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이 시작한 전쟁에 군대를 파병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당사자인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스스로가 “실패한 전쟁”이었다고 실토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인류사회는 평화와 안정 대신 분노와 복수심으로 불타는 급진테러를 양산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라크는 다시 강력한 반미 국가로 회귀했다. 그나마 이라크 전쟁은 독재 타도와 불량 국가의 대량 살상무기 폐기라는 고상한 목표로 국제사회의 공조와 다국적군이란 틀 속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오늘날 호르무즈 사태의 1차적 책임자는 미국이다. 미국을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전원과 독일(P+1)까지 뜻을 모아 이란과 합의안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다른 우방국의 동의 없이 파기한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최근 걸프해역에서 발생한 몇 건의 우발적인 선박 공격에도 이란 정부는 일관되게 개입을 부정하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불필요한 군사적 자극으로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어떤 도발도 자제하라고 특별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어떤 국제적 조사에서도 이란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거나 정황적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이 항공모함과 B-52 전략 폭격기 등을 파견해 이란이 원유 수송의 생명선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상응하는 군사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된 적은 없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8년 전쟁 때도 호르무즈 해협은 한 번도 봉쇄되지 않았다. 이란을 압박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긴장을 부추기는 쪽은 오히려 미국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 참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 국면은 미국과 이란의 양자 간 문제다. 한국을 끌어들여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무엇보다 이란과 한국은 한·미동맹 못지않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만 해도 2000여 개가 넘는다. 이란 정부가 한국을 적대적 이해당사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의 이란 제재 압력을 받아들여 우리 기업이 큰 손해를 보고,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로 국내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안전을 구실로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다. 독일이 파병 거부 의사를 밝히고 일본조차 파병에 부정적인 기류를 보이는 것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군대 파병은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 선박의 통행 안전보다는 친구를 적으로 돌려 선박 통행 안전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이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친구에게 등을 돌리는 외교적 선택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는 또 다른 역사적 판단 실책으로 기록되고 기억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