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그랑데 16㎏ 블랙케비어
습한 날 옷을 제대로 안 말린 게 냄새의 원인이란 건 결혼 후 알게 됐다. 그래서 몇 년 전 이사하면서 건조기를 장만했다. “세탁기에서 셔츠를 꺼내 팍팍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털고 쫙 펴서 건조대에 말리라”는 잔소리를 안 듣게 된 게 참 좋았다. 옷에서 냄새도 안 났다.
번거로운 일이 생기긴 했다. 건조기를 거친 셔츠가 많이 구겨졌기 때문이다. 다림질할 때 손이 많이 갔다. 출근 시간 쪼그라든 셔츠를 펴느라 시간을 허비할 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건조기를 안 쓸 순 없었지만 ‘구김이 덜 가는 건조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게 삼성전자 건조기 ‘그랑데 16㎏ 블랙케비어’다. 인터넷 블로그 후기도 ‘설정 온도가 60도라 옷감도 덜 상하는 것 같고 구김도 덜하다’는 내용이 많았다. 건조기를 빌려 3주 정도 써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김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기존 건조기보단 훨씬 덜했다. 같은 브랜드, 동일 재질의 흰색 셔츠 두 장을 세탁하고 기존 건조기와 블랙케비어에 각각 넣어 표준 건조 기능을 가동해본 결과다. 블랙케비어에서 나온 셔츠는 다리미를 오래 잡고 있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셔츠 모드(건조 시간이 짧지만 건조 정도를 ‘표준’에서 ‘강력’으로 올릴 수 있음)로 얇은 재질의 잘 구겨지는 반팔 셔츠 여러 장을 건조했을 때도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다림질을 30초 정도 대충해도 입고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직장인을 겨냥해 작정하고 여러 ‘부가 기능’을 넣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대표적인 게 ‘다림질 알림’이다. 옷감에 수분이 약간 있는 상태가 다림질하기 좋다는 것에 착안한 기능이다. 건조 완료 약 20분 전에 건조기가 알람을 울린다. 단순한 기능이지만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두꺼운 셔츠를 건조할 땐 다림질 알림을 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가을에 주로 입는 약간 두꺼운 캐주얼 셔츠를 알람이 울려 꺼냈더니 다림질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축축했다.
‘구김 방지’ 기능도 바쁜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들어간 기능이다. 건조 완료 후에 옷을 꺼내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건조통이 돌아가 옷의 위치를 바꿔준다. 건조기에 옷이 ‘그대로’ 있으면 열 때문에 구김이 심해진다는 데 착안한 기능이다. 건조기를 켜놓고 나갔다 올 일이 있을 때 유용한 기능이란 느낌이 들었다.
미세먼지에 지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능도 있었다. ‘에어살균’ 기능이다. 유해 세균과 진드기, 꽃가루까지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삼성전자는 강조한다. 해외에서 직구했지만 특유의 외국 냄새 때문에 옷장에 둔 쿠션 4개를 넣고 에어살균 기능을 써봤다. 겨드랑이 악취와 비슷했던 쿠션 냄새가 거의 사라졌다. 진짜 진드기가 다 사라졌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광고가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죽은 패딩’을 두툼하게 부활시킨다는 ‘패딩케어’ 기능도 명불허전이다. 건조기가 ‘요술램프’로 보일 정도였다. 겨울에 패딩 드라이클리닝 비용 두세 번은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랙케비어는 신제품답게 ‘스마트’하다. 건조기 하단 센서가 옷감의 습도를 측정해 건조 시간을 조절한다. 예컨대 에어살균 기본 설정 시간은 3시간 정도였지만 마른 쿠션 커버를 넣었을 땐 저절로 1시간30분 정도로 줄었다. 다른 기능을 실행했을 때도 저절로 건조 시간이 바뀌었다. ‘스마트싱즈’란 삼성전자 앱(응용프로그램)을 쓰면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앱은 친절하기까지 하다. 의류 종류에서 니트를 지정하면 어떤 모드로 건조시켜야 하는지 알려준다.
소음은 있었다. 하단 물받이 키트를 붙여 건조기를 안방에 놓고 처음 가동했을 때 아랫집 사람이 올라올까봐 조마조마했다. 며칠 지나면 이 소리에도 익숙해지긴 한다. 그래도 집 안보다는 세탁실에 놓는 걸 추천한다.
16㎏ 대용량이어서인지 키 180㎝인 기자의 명치 가까이 올라올 정도로 ‘거대’하다. 이불 빨래는 편했다. 기존 건조기는 용량이 9㎏이라서 이불을 건조기에 넣어도 안 말려진 부분이 곳곳에 있었다. 그래서 이불은 건조기에 넣지 않았다. 블랙케비어는 달랐다. 물기를 잘 머금는 재질의 담요를 세탁하고 건조했는데 뽀송뽀송했다.
인테리어 관점에선 물음표가 생긴다. 거실에 놓으려고 했던 건조기를 안방에 둔 것은 같이 사는 사람이 “거실에 두면 집 미관을 해친다”고 했기 때문이다. 후기 기사를 쓰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살펴봤는데 투박한 ‘미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이 ‘가정친화적’은 아닌 것 같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