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실명을 언급하며 “미국이 대결적 자세를 버리지 않고 제재 따위를 가지고 우리와 맞서려고 한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이 외무상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우린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다”며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폼페이오 장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미국 외교의 독초”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협상의 앞길에 어두운 그늘만 던지는 훼방꾼” 등 막말을 동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1일 미국 정치전문지 워싱턴이그재미너와 인터뷰하면서 대북제재 유지를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린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무상은 이 인터뷰를 “망발”이라고 했다. 또 “아직도 미국이 제재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허황한 꿈을 꾸고 있다면 저 혼자 실컷 꾸게 내버려 두든지 아니면 그 꿈을 깨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의 가장 큰 ‘위협’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며 미국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위해 그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반드시 깨닫도록 해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직접 불만을 나타낸 것은 지난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 후 처음이다. 이 외무상이 직접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그동안 외무성 대변인이나 권정근 미국담당 국장 명의의 담화,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대미 비난 수위 조절을 해왔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美국무장관
폼페이오 美국무장관
애초 미·북 실무회담은 한·미 연합지휘소훈련 종료 후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20~23일 방한한 것도 이런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북한이 자신들의 아킬레스 건이나 다름없는 대북제재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며 미국을 압박하는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협상 재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 외무상의 담화 발표 시점도 미묘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다음날이자 비건 대표가 미국으로 돌아간 날 발표했다. 오는 29일 최고인민회의도 앞두고 있다. 9월엔 유엔총회가 열린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성명의 위상이나 타이밍, 내용 모두 상당히 의미 있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약화와 북·중 관계 개선을 최대한 활용하며 핵 보유를 굳히려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