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결과는 한국경제신문이 대형 로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조사에서는 로펌들이 기업 인수합병(M&A)와 조세 관련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 상반기 같은 내용의 조사와 비교할 때 국제통상, 지식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형사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日 경제보복 여파로 국제통상도 관심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9일부터 5일간 9개 대형 로펌들에게 ‘하반기 로펌업계를 뜨겁게 달굴 화두나 분야’를 물었다. 조사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광장, 태평양, 율촌, 세종, 화우, 바른, 지평, 충정 등이 참여했다. 로펌들에게는 △인사·노무 △조세 △공정거래 △M&A △형사 △기업 구조조정 및 지배구조 △국제중재 국제통상 △준법경영 △입법 컨설팅 △지식재산권 등 10개 분야에 대해 3개씩 중점 사안을 뽑아달라고 요청했다.
관심도가 가장 높은 분야는 인사·노무로 7개 로펌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인사·노무는 지난 상반기 조사에서도 7개 로펌이 중요한 분야로 꼽았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주 52시간 근로제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등 노동시장에서 대형 이슈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지금도 인사·노무와 관련한 일감이 증가세에 있고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여러 차례 가이드라인을 내놨는데도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선을 겪고 있어 자문 수요가 확대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정거래와 준법경영은 각각 5표를 받았다. 상반기보다 각각 1표씩 늘어난 수치다. 또 다른 로펌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형사고발권을 행사하는 등 공정거래 사건이 갈수록 증가하고 복잡해지면서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도 기업들이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로펌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 방침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윤 총장은 2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취임 첫날 “공쟁한 경쟁이야말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정의”라며 “권력기관의 정치·선거 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행위, 우월적 지위 남용 등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로서는 공정거래와 준법경영에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써야 하는 시국이다.
일부 반도체 소재에 수출 조건을 까다롭게 바꾼 일본의 경제보복 등을 거론하며 국제중재·국제통상 관련 일감에 촉각을 세우겠다고 밝힌 로펌도 3곳이 나왔다.
당분간 형사 자문은 주목받지 못할 것
반면 조세와 M&A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고 응답한 로펌은 1곳도 없었다. 대형 로펌의 파트너변호사는 “상반기에 조세 분야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인사·노무나 공정거래에 비해 후순위로 밀리는 상황”이라며 “현 정부가 기업들에게 칼을 휘두를 때 국세청을 동원하는 방식을 별로 보여주지 않아왔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로펌의 파트너변호사는 M&A 자문 수요 증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대형 매물이 부족하고 넥슨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는 등 시장이 부진해졌다”고 말했다.
형사 분야도 1표를 받는데 그쳤다. 상반기에는 2표였는데 그나마 1표가 줄었다. ‘적폐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통적 의미의 형사사건은 주목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다. 상당수 대형 로펌들은 당분간 형사 자문이 인사·노무나 공정거래, 준법경영 수사의 부차원인 수준으로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하반기에 지식재산권과 입법컨설팅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2표와 1표 나오면서 1표씩 늘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