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인도네시아의 강과 해변이 다시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미국 쓰레기의 영향을 받아야 합니까.”

지난달 12일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수라바야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 앞. 12세 소녀 아이쉬니나 아자라와 11세 소녀 스케헤라자드 피히 마 피히가 손편지를 들고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쓴 편지에서 소녀들은 미국의 쓰레기 수출을 따져 물었다. “왜 당신은 쓰레기를 항상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나요?”

선진국 쓰레기 처리 문제를 놓고 몸살을 앓고 있는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실력 행사에 나섰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 기존 쓰레기를 해당 국가에 되돌려 보내는 것은 물론 아예 해외 쓰레기 반입을 법으로 금지하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는 “더는 선진국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지 않겠다”며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를 법제화했거나 관련 법규 마련을 추진 중이다.


“다시 가져가라”…동남아시아의 쓰레기 반격

캄보디아 환경부는 지난달 16일 남서부 시아누크빌항에서 1600t의 쓰레기로 가득 찬 컨테이너 83개를 적발했다. 출처를 확인한 결과 70개는 미국에서, 13개는 캐나다에서 밀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캄보디아 당국은 이들 쓰레기를 모두 반송하고 관련자를 처벌하기로 했다. 앞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관계 부처에 쓰레기 수입 금지를 지시했다.

인도네시아 환경부와 수라바야 세관당국은 지난달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로 가득 찬 컨테이너 5개를 수라바야에서 미 서부 도시 시애틀로 돌려보냈다. 인도네시아 세관에는 이들 컨테이너에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만 실렸다고 신고됐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과 유리병, 기저귀 등이 넘쳐났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불법으로 수입된 폐기물을 조사해 규정 위반 국가와 반송 폐기물 리스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지난 5월 수도 쿠알라룸푸르 서쪽 클랑항에서 450t 분량의 폐기물 컨테이너 10개를 적발해 모두 되돌려보냈다. 이들 쓰레기는 미국 영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호주 중국 등 10개국에서 밀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정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4개국에서 수입한 재활용 폐기물만 4억2800만t에 달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재활용 폐기물 수입 전면 중단 조치까지 발표하며 선진국 쓰레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필리핀은 쓰레기 밀반입 문제를 놓고 캐나다와 외교 갈등을 빚기도 했다. 5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캐나다가 2450t의 쓰레기를 되가져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캐나다에서 고위 외교관들을 철수시키겠다고 압박했다.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는 아예 유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마련했다. 태국은 2021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기로 했고, 베트남은 2025년부터 유해 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선진국 쓰레기 되가져가라"…동남아, 폐기물 수입 잇단 거부
중국이 문 걸어 잠근 뒤 동남아로 ‘풍선 효과’

최근 동남아 곳곳에서 쓰레기 처리를 놓고 분쟁이 벌어진 건 중국이 수입을 규제하면서 나타난 ‘풍선 효과’란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그동안 ‘쓰레기 수입 대국’으로 불렸다. 2017년에만 730만t의 폐플라스틱을 수입했다. 세계 수입량의 약 56%를 차지하는 수치다. 금액으로는 37억달러(약 4조3500억원)에 달했다.

중국의 쓰레기 수입이 세계 최대였던 것은 돈 때문이었다. 쓰레기를 재가공해 판매하면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중국 전역에 쓰레기를 재활용해 이익을 내는 업체만 2000여 곳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쓰레기에 오염물질과 위험물질이 대거 섞여 있어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플라스틱과 종이 등 세계 쓰레기 수출의 최소 절반을 받아준 중국이 수입을 금지하자 갈 곳을 잃은 선진국 쓰레기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동남아로 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인도네시아의 쓰레기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56%, 베트남은 50%, 태국은 1370% 증가했다. 이들 국가에선 불법 재활용 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주민들은 환경 파괴를 호소하고 있다. 동남아 각국에서 쓰레기 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민 생계 위협한다는 비판도

동남아 국가들이 선진국과 벌이는 쓰레기 전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 동남아 국가에서 폐기물 재활용이 대표적 산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자체 자원이 부족해 산업화에 필요한 자재 대부분을 선진국에서 발생한 재활용 쓰레기에 의존했다. 1t가량의 폐지를 재활용하면 미국 평균 가정이 6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데 폐플라스틱을 이용하면 필요한 에너지의 87%를 절감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2015년 세계에서 1억8000만t의 재활용 쓰레기가 거래됐다. 액수로는 870억달러에 달한다.

쓰레기 수입 중단으로 관련 공장에서 일하는 서민들의 생계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재활용 종이 생산공장에선 1000여 명의 주민이 하루에 3000~4000원가량을 받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남아 국가들이 돈이 되는 폐기물 재활용산업을 외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폐기물 수입 규제 정책 역시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쓰레기 수입 중단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입 쓰레기는 지난 30년 동안 중국 제조업 발전에 크게 도움을 줬다”며 “수입 중단은 누구를 위한 결정인가”라고 꼬집었다. 수입 금지 조치가 중국 내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