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기조 유지했던 우산혁명과 달리 곳곳 충돌·폭력 발생
"홍콩 경제, 우산혁명보다 더 심각한 타격 입어" 우려 목소리
中 중앙정부, '무력개입' 경고…캐리 람 대화 나서 결과 주목
'우산혁명' 넘어선 80일째 反송환법 시위, 끝이 안 보인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27일로 80일째를 맞으며 2014년 79일 간 지속했던 '우산 혁명'을 넘어서는 홍콩의 최장기 민주화 시위로 기록됐다.

우산 혁명은 2014년 9월 28일부터 79일 동안 대규모 시위대가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민주화 시위다.

우산 혁명은 당시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액 등을 막아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산 혁명은 홍콩 정부가 강제 진압에 나서면서 79일째 되는 날 무너졌지만, 송환법 반대 시위는 80일째를 맞아서도 시위 동력이 전혀 사그라지지 않은 채 더욱 격렬해질 조짐마저 보인다.

송환법 반대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31일 또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으며, 홍콩 내 10개 대학과 100여 개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다음 달부터 수업 거부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지난 6월 9일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의 홍콩 시민이 모여 "송환법 철폐"를 외친 빅토리아 공원 집회를 시발점으로 본다.

이는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뒤 일어난 최대 규모 시위였으며, 그 다음 주인 16일에는 홍콩 정부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데 분노해 주최 측 추산으로 무려 200만 명이 모인 시위가 벌어졌다.

홍콩 정부가 추진한 범죄인 인도 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홍콩 야당과 재야단체는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했고, 홍콩 시민들은 대규모 시위로 동조의 목소리를 냈다.

예상 밖으로 거센 민심의 분노에 놀란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6월 15일 송환법 추진을 "보류한다"고 밝힌 데 이어 7월 9일 송환법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시위대는 송환법이 사망했다고 하면서도 법안의 공식적인 철회는 거부하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태도에 진정성이 부족하다면서 5대 요구 조건을 내걸고 정부의 수용을 촉구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우산혁명' 넘어선 80일째 反송환법 시위, 끝이 안 보인다
하지만 홍콩 정부가 5대 요구 사항 중 어느 것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7월 들어 시위는 점차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비폭력으로 일관했던 우산 혁명과는 뚜렷하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시위대는 평화로운 집회나 행진을 벌였지만, 공식 집회가 끝난 후 일부 시위대가 남아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빚는 일이 반복됐다.

지난달 2일에는 일부 시위대가 홍콩 의회인 입법회 청사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고, 14일 사틴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로 시위 참여자, 경찰, 현장 취재 기자 등 28명이 다쳤다.

지난달 21일에는 일부 시위대가 중앙정부 홍콩 주재 연락사무실 앞까지 가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고 날계란을 던지는 등 강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바다에 버리거나 훼손하는 일도 수차례 벌어졌다.

이달 12일부터 이틀 동안은 시위 참여 여성이 경찰의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하자 시위대가 홍콩국제공항을 점거했고, 이에 1천 편에 가까운 여객기가 결항하는 '항공대란'이 벌어졌다.

극심한 충돌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 18일 170만 명이 참여한 송환법 반대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는 등 평화시위 기조가 정착하는 듯싶었지만, 불과 열흘만인 지난 주말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이 재연됐다.

지난 주말 쿤통과 췬안 지역 시위에서 벌어진 충돌로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86명, 부상자는 40명을 넘는다.

시위가 장기화하고 격렬해지면서 홍콩 경제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송환법 반대 시위가 홍콩 경제에 미친 영향은 우산 혁명 때보다 더 심각하다"며 "금융, 관광, 소매, 부동산 등 모든 부문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우산 혁명 당시 2014년 9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79일 동안 홍콩 항셍지수는 2.75% 하락했지만,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진 지난 6월 9일부터 이달 26일까지 79일 동안 항셍지수는 4.8% 떨어졌다.

우산 혁명 당시 기업공개(IPO) 자금 조달액은 전년 비 39% 감소했지만, 이번 시위 기간 IPO 자금 조달액은 무려 87% 급감했다.

알리바바, 버드와이저 브루잉 등 대규모 상장 계획이 유보되면서 이달 IPO는 고작 1건에 그쳤다.

우산 혁명 때인 2014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2%에 달했지만, 올해 2분기 성장률은 고작 0.6%를 기록했다.

최근 홍콩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당초 '2∼3%'에서 '0∼1%'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달 홍콩을 찾는 관광객 수는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소매업 매출도 급감하고 있다.

관광 경기가 극도의 침체를 보이면서 호텔, 여행업계에서는 감원과 무급휴가가 잇따르고 있다.
'우산혁명' 넘어선 80일째 反송환법 시위, 끝이 안 보인다
홍콩 경제의 극심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송환법 반대 시위가 우산 혁명 때보다 더 길게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분석이 제기된다.

우선 우산혁명 당시보다 훨씬 심각해진 집값 문제, 사회적 불평등 등으로 인해 송환법 반대 시위의 주력인 젊은층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점이다.

홍콩의 아파트 가격은 우산혁명 때보다도 훨씬 올라 3.3㎡(평)당 1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홍콩인의 월급 중간값은 약 240만 원에 불과하지만, 20평짜리 아파트가 20억원을 넘어서니 홍콩의 젊은이들은 집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홍콩의 1인당 GDP는 5만6천 달러에 달하지만, 시간당 최저임금은 34.5홍콩달러(약 5천300원)에 불과할 정도로 불평등이 심하다.

홍콩 언론은 이를 두고 홍콩의 젊은이들이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는 '삼무(三無) 세대'로 전락했다고 표현한다.

더구나 홍콩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데는 중국 본토인들이 매년 수만 명씩 홍콩으로 밀려 들어오고, 홍콩을 '재산 도피처'로 여기는 중국 부자들의 '검은돈'이 쏟아져 들어온 탓이 컸다.

중국 중앙정부의 압박으로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잠식되고 보통선거권 등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한다는 인식이 큰 상황에서, 경제적 문제마저 커지니 중국에 대한 반감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최근 시위에서 중국 국가 휘장을 훼손하고 오성홍기를 바다에 버리거나, 미국 성조기나 영국 국기를 들고나오는 등 극심한 반중국 정서가 표출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반중국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면서 '무력개입'마저 불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지만, 지난 18일 집회에 170만 명의 홍콩 시민이 쏟아져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위협은 통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중국의 '강경 대응' 주문은 캐리 람 홍콩 정부의 운신 폭을 좁게 만들어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24일 정치인, 전직 고위 관료 등 홍콩 유력 인사들과 회동에서 '송환법 철폐'와 '경찰 강경진압 조사'라는 시위대의 일부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지자 "나는 송환법 철회라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캐리 람 장관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중앙정부의 강경한 반대로 인해 송환법 철폐를 선언할 수 없음을 시사한 말이다.

홍콩 시위 정국이 강대강(强對强) 대치 국면으로 흐른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다만 캐리 람 장관이 젊은 층과 대화를 시작한 것은 홍콩 사태의 해결에 한 가닥 희망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다.

전날 홍콩의 20∼30대 젊은이 20여 명과 비공개 회동을 한 캐리 람 장관은 송환법 완전 철폐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가 젊은 층과 대화에 나선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 컨설턴트 앨리스 우는 "시위대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경찰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캐리 람 행정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서는 '통치'"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