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2차 협력회사 대표 A씨가 구속됐다. 1차 협력사를 협박해 자신의 회사를 70억원에 강제로 넘긴 혐의다. A씨는 “회사를 사가지 않으면 부품 공급을 끊어 1차 협력사는 물론 완성차 생산 라인까지 가동을 멈추도록 하겠다”고 협박했다. 2, 3차 협력사가 납품을 하지 않으면 연쇄적으로 라인이 중단돼 결국 완성차 업체의 공장을 돌릴 수 없게 된다. A씨의 협박에 1차 협력사는 부채가 200억원이 넘는 부실회사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한 부품회사 대표는 “자동차산업이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상당수 부품사 오너들이 사업을 접고 싶어한다”며 “부품사 인수를 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1차 협력사에 강매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르노삼성자동차, 한국GM, 쌍용자동차 등 중견 완성차 3사가 동시에 구조조정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면서 부품사들의 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지 8월 26일자 A1, 6면 참조
자동차산업의 장기 침체로 부품회사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기 평택에 있는 만도 브레이크 공장에서 직원들이 생산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한경DB
자동차산업의 장기 침체로 부품회사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기 평택에 있는 만도 브레이크 공장에서 직원들이 생산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한경DB
중국에서 대규모 적자

27일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67곳의 자동차 1차 협력업체가 사라졌다. 2013년 898곳에 달했던 1차 협력사 수는 지난해 831곳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1년 만에 1차 협력사 수가 20개나 감소했다. 조합 관계자는 “(1차 협력사 중) 일부는 폐업했고, 나머지는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겼다”며 “2, 3차 협력사는 얼마나 줄었는지 파악조차 안 된다”고 말했다.

부품업계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총체적 난국’으로 진단했다. 연간 매출이 5조원이 넘는 초대형 부품사부터 영세 부품사까지 모두 경영상황이 악화됐다. 대형 부품사는 대부분 중국 시장에서 매년 수십억~수백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중국에서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동반 진출한 부품사도 휘청이는 모습이다. 현대·기아차는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반토막 난 중국 판매량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부품사 중 한 곳인 만도는 올 상반기 중국에서 109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4.6% 줄었다. 공장 가동률도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브레이크 부문의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상반기 60%에서 올 상반기 41%로 19%포인트 내려갔다. 서스펜션 부문의 올 상반기 가동률은 51%로, 3년 전인 2016년 상반기(94%)에 비해 반토막 수준이다.

성우하이텍의 7개 중국법인은 올 상반기 중국에서 215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53억원)보다 적자 폭이 네 배로 커졌다. 매출은 갈수록 줄고 있다. 2016년 상반기 중국 매출은 6628억원에 달했지만 올 상반기엔 3035억원에 그쳤다. 서연이화와 에스엘, 서진오토모티브, 화신 등 다른 대형 부품사 사정도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적자를 내면서 본사 경영도 휘청이고 있다”며 “중국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회사도 있다”고 말했다.
中시장 부진에 완성차 3사 감산 후폭풍…"부품사, 하반기 최대 고비"
인력 구조조정 본격화하나

소형 부품회사는 고사 직전이다. 각 지역을 돌며 부품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부품사 대표 대부분은 ‘내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입을 모은다”며 “공공연하게 ‘공장 문을 닫고 싶다’고 하는 이도 많다”고 말했다. 김치환 삼기오토모티브 사장은 “회사를 팔고 자녀에게 현금을 물려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품사 대표가 주변에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 218개 중소형 부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0%였다. 2016년까지만 해도 3%대를 유지했지만 2년 만에 급감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만도는 지난달 임원 20%를 줄이고 관리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내용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2008년 이후 10년 만의 구조조정이다. 중소형 부품업체들은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및 부품업계 고용 인력은 38만3665명이다. 1년 전(39만1132명)에 비해 1만 명 가까이, 2년 전(40만988명)보다는 2만명가량 줄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