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문화·소비 키워드 '플렉스', 명품·패션시장 흔들다
“플렉스해버렸어.”

요즘 1020세대가 쓰는 말이다. ‘플렉스(flex)’는 ‘구부리다’는 뜻이지만 1990년 미국 힙합문화에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다’란 의미로 사용됐다. 이 단어가 최근 한국으로 건너왔다. 래퍼 기리보이, 염따 등이 사용하며 유행하기 시작한 뒤 음악시장을 넘어 소비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플렉스를 목표로 돈을 모은 1020세대들이 명품 구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르바이트하거나 용돈을 모아 명품을 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플렉스하는 게 젊은이 사이에서 트렌드가 됐다.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에서 1020세대의 명품 소비액은 해마다 두 자릿수씩 늘고 있다.
1020 문화·소비 키워드 '플렉스', 명품·패션시장 흔들다
“하루에 4000만원 플렉스 성공했어”

작년 7월 래퍼 기리보이가 ‘flex’란 노래를 공개했다. “너희 옷이 그게 뭐야 얼른 갈아입어. 구찌 루이 휠라 슈프림 섞은 바보… F.L.E.X 질투와 시샘 받으면서 우리 멋있어지자”가 후렴구로 반복된다. 이어 지난 3월엔 래퍼 염따가 ‘돈 call me’라는 곡에서 이 단어를 썼다. 염따는 이 앨범의 로고와 캐릭터를 새긴 티셔츠를 팔았다. 4일 만에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염따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돈으로 플렉스하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돈다발이 든 가방을 들고 모범택시에 탄 뒤 4000만원짜리 캐딜락 중고차를 샀다. 이를 본 1020세대들은 “하루에 4000만원 플렉스에 성공하다니” “클래스가 남다른 래퍼”라는 댓글을 달았다.

자신의 능력이나 재산 규모에 비해 지나친 소비를 하는 것을 약간의 후회와 함께 플렉스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한편에는 플렉스하고 싶은 마음과 부러움도 녹아 있다. 이런 과시에 대한 욕구는 1020세대의 명품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1020 문화·소비 키워드 '플렉스', 명품·패션시장 흔들다
1020의 명품 소비 늘어

‘플렉스하다’란 말에는 옷은 싼 걸 사도 가방이나 신발 등 뭐 하나는 명품을 걸치고 싶어 하는 소비심리가 반영돼 있다. 힙합 가사에 등장하는 명품 브랜드에 대한 학습을 이미 끝낸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모아서 100만원짜리 명품 신발이나 150만원짜리 클러치, 80만원짜리 지갑을 사기 시작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1020세대의 명품 소비(매출) 증가율은 2016년까지만 해도 8.5%에 불과했다. 당시 명품 매출 전체 증가율(9.4%)보다 낮았다. 하지만 1020세대의 씀씀이는 매년 20%대로 급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작년 상반기보다 24% 늘었다. 올 상반기 명품부문 매출 증가율(22.9%)보다 높은 수치다.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2016년 명품 매출 증가율(9.7%)과 비슷했던 20대의 명품소비 증가율(11.3%)은 해마다 크게 올라 올 상반기엔 35.1%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전체 명품 매출 증가율(28.8%)보다 높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카드 매출 기준이기 때문에 10대의 현금 소비까지 합하면 이보다 더 높을 것”이라며 “매장에 명품 브랜드 제품을 한두 개씩 지니고 명품을 사러 오는 10대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1020 문화·소비 키워드 '플렉스', 명품·패션시장 흔들다
‘플렉스’ 는 과시욕 아닌 자신감

패션업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아직 직접적인 매출로 연결되진 않지만 플렉스가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LF는 신규 액세서리 브랜드 HSD의 신제품 가방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고 제목을 ‘HSD 신상가방 FLEX’라고 달았다. 1020세대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목표다. 이 가방의 장점을 소개하는 영상을 통해 “이 가방으로 플렉스해 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캐주얼 브랜드 캉골도 플렉스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홍대에서 젊은 층을 위한 캠페인으로 ‘플렉스 유어셀프’ 행사를 열었다. ‘너만의 자신감’을 콘셉트로 해 아티스트와 소비자들이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행사 이름에 플렉스를 사용했다. 플렉스를 ‘과시욕’으로 보지 않고 ‘자신감’으로 해석해 젊은 소비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게 하자는 취지다.

김인권 LF 상무는 “패션 상품은 기본적으로 사치재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은 대중의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며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신조어를 제품 마케팅에 활용하는 건 ‘코드를 읽을 줄 아는 앞서가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플렉스(flex)

‘구부리다’라는 뜻에서 파생해 ‘몸 좋은 사람들이 등을 구부리며 근육을 자랑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요즘 1020 세대는 ‘돈을 쓰며 과시하다’ ‘지르다’라는 뜻으로 쓴다. 래퍼들이 사용하면서 급격히 퍼지고 있는 신조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