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10년의 힘'은 어디로 갔나
의료 관광레저 첨단산업 등 분야의 외국인 투자를 집중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된 건 2002년 12월이었다. 임기를 두 달 남겨둔 김대중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성사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임자의 뜻을 이어받아 인천 송도 일대를 1호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고 병원과 카지노 리조트 유치에 우선적으로 나섰다. 투자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는 영리법인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영리병원’ 논란의 시발이었다. 인접한 중국 지역에서 관광객을 대거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으로 대형 카지노 유치에도 힘을 쏟았다.

여기에는 한 가지 비화(話)가 있다. 김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접어든 무렵, 한 기업인이 면담을 요청했다. 서해 일대가 남북한 간 잦은 충돌로 인해 ‘한반도의 새로운 화약고’로 떠오르던 때였다. 적극적인 ‘햇볕정책’으로 공식적인 남북한 간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었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군사충돌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이 기업인은 사업가의 본능으로 “서해 최북단에 미국계 병원과 중국계 카지노가 들어서고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면 북한이 함부로 군사도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얘기에 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인천경제자유구역 개설로 이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두 대통령이 대를 이어 추진한 투자개방형 병원은 ‘영리병원 불가’ 주장에 발목이 잡혔고, 외국계 카지노는 ‘도박공화국 조장과 국부 유출’ 논리에 제동이 걸렸다. 경제자유구역은 원래의 밑그림과 다른 ‘무늬뿐인 경제특구’로 전락했다. 두 대통령은 일부 지지세력들로부터 “재벌의 성장담론에 오염됐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노 대통령은 훗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나서면서 좌파 지지층의 호된 공격을 받았다. 취임 초기에만 해도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큰소리친 그였기에 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뒤 한국이 글로벌 통상블록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미국과의 경제동맹 강화가 불가피함을 절감했다. “나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2006년 3월,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라는 유명한 선언이 나온 배경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10년 집권 기간에 수많은 전문 관료의 도움을 받았다. 엘리트 관료들은 대통령이 국가 진운(進運)이 걸린 의사결정을 할 때 특정 이념에 포획돼 판단을 그르치지 않게끔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대통령들은 귀를 열었고, 관료들과의 열띤 토론을 통해 인지의 세계를 공진화(共進化)해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2월,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출범시킨 ‘10년의 힘 위원회’는 이런 베테랑들의 결사체였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쟁쟁한 전직 장차관 70여 명이 참여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준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10년의 힘’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문 후보도 ‘10년의 힘’ 출범식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민주주의와 남북 평화 등에서 큰 성과를 거뒀지만, 양극화와 국민 통합에서는 성공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3기 민주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나침반 역할을 해달라.”

선거 이후 ‘10년의 힘 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평생을 반골로 살아온 ‘86세대’ 운동권 출신과 좌파이론가들이 대통령 곁을 철통같이 둘러싸고 있다는 말이 무성하다. 시장참여자들의 거센 아우성과 하소연에도 꿈쩍 않고 설계주의 경제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그런 산물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성공을 다짐했던 양극화 해소와 국민 통합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극단으로 치닫는 한·일 외교전쟁과 한·미 안보 불협화음, 법무장관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은 오히려 국민을 두 쪽으로 쪼개놓고 있다. 경청과 수렴의 경륜 있는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