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R까기] 조합의 눈물, 정말 악어의 눈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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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요 조합들, 분양가 상한제 시행반발 집회 예정
집값 하락·공급과잉 우려 제기
집값 상승 염두한 분양가 상한제, 시행해도 되는 정책인가?
집값 하락·공급과잉 우려 제기
집값 상승 염두한 분양가 상한제, 시행해도 되는 정책인가?
"분양가 상한제 시행되기 전에 서두른다구요? 저희 조합 설립된 지가 15년이 넘었습니다."(A조합원)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의 조합원은 기자를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럴만도 하다. 수백명에서 수천명까지 참여하는 사업인 재개발, 재건축이 몇 년 만에 '뚝딱'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여유있는 조합원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조합원들도 많다. 그들에게 '머니게임' 중이냐고 묻는다면 '인생게임' 중이라는 답이 나온다.
정비사업은 적게는 8년, 길게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조합이 클 수록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하나둘씩 생기면서 갈등을 빚고 뜻하지 않은 속앓이도 수도 없이 벌어진다. 과정만 늘어놓고 봐도 ▲정비구역 지정 후 조합설립인가 ▲조합설립에서 사업시행인가 및 통과 ▲관리처분인가 ▲착공 ▲준공 등이다.
주택시장이 침체기였던 2013년께 서울 강북권에서 어렵사리 추진됐던 아파트들은 준공후 미분양이 예삿일이었다. 10년을 추진해 준공된 아파트지만, 조합원의 입주권도 쏟아졌던 시기였다. 긴시간 어렵사리 추진해 새 집에 들어가면서도 조합원들은 입주권을 포기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당시 기자가 취재한 대답중에 인상깊은 답은 '지긋지긋하다'였다.
골목에서 마주했던 이웃들과 새 집을 지어보겠다면서 호기롭게 시작했던 재개발은 이웃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의 집안사정까지 알게되고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는 준공됐지만, 미분양으로 인한 추가분담금은 부담되고 동네에 온갖 정이 떨어져 결국엔 입주권을 내놨다는 얘기였다. 조합원들이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는 건 '몸테크(몸+재테크)'의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몸테크는 재개발·재건축을 앞두고 주거환경은 열악하지만, 미래의 재테크를 위해 당장에는 힘든 몸을 감수한다는 말이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주로 하는 방식이다. 정작 살아보면 '말이 미래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냉난방, 주차, 상하수도 등 관련시설들이 닳을만큼 닳아버린 곳에서 거주하다보면 '몸테크 하다 몸살 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은 집을 지을 때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쓴다는 얘기지만, 정비사업에서 10년 세월은 체감이 아니라 정말로 지나는 시간이다. 조합원들의 빈부차이와 개인사정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지난다. 이처럼 정상적으로 흘러가도 족히 10년은 됐을 사업에 '분양가 상한제'라는 찬물이 쏟아졌다. 분양 전 기대이익도 재산권이라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도입했던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면서 분양승인 전 조합원 가치는 단순 기대이익이라며 재산권 침해가 아니라고 입장을 내놨다.
사업이 안갯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재건축을 중심으로 조합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지사다.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사업 주요 조합들은 내달 6일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번 시위에 참여하는 조합은 80여개, 참여인원도 2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분양가를 눌러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돕고 시세를 안정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여기에 전제는 그렇다. 무주택자들은 어려운 서민이어야 하고, 집값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나온 전망들을 보면 규제의 전제조건과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집값 하락', '공급 과잉' 등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예고하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올해 전국 주택시장 매매가격 변동률 전망치를 -1.0%에서 -1.4%로 수정했다. 감정원은 매년초 부동산시장 전망치를 발표하고 하반기에 수정 전망치를 한번 더 발표하는데, 이번에 나온 수정치는 집값이 예상보다 더 떨어진다는 전망이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더라도,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공급이 줄면서 기존 아파트값이 상승하지는 않는다는 추정도 덧붙엿다.
앞서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우리나라 주택공급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주택의 공급과잉을 전망하면서 준공후 미분양이 늘어나고 전셋값도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주택 공급 물량은 기초 주택 수요를 35만8000가구 초과했고 2016년에는 공급 과잉이 32만2000가구, 2017년 29만6000가구 이상이다.
내년엔 준공 후에도 분양되지 못하는 주택이 최대 3만 가구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과 함께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확산되면 임대인은 전세보증금 반환 압력이 커지고, 임차인 역시 돈을 제때 받기 힘들어 유동성 제약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집이 남아돌고 집값이 떨어진다는데, 집값을 인위적으로 누르는 분양가 상한제가 과연 필요할까? 다 떨어져도 강남만 집값이 오르고, 강남 집값이 집값 상승의 원흉이라고 치자. 과연 대출의 도움없이 분양가 상한제 덕을 보면서 강남에 입성할 수 있는 무주택자는 누굴까? 이제 정부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할 때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의 조합원은 기자를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럴만도 하다. 수백명에서 수천명까지 참여하는 사업인 재개발, 재건축이 몇 년 만에 '뚝딱'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여유있는 조합원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조합원들도 많다. 그들에게 '머니게임' 중이냐고 묻는다면 '인생게임' 중이라는 답이 나온다.
정비사업은 적게는 8년, 길게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조합이 클 수록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하나둘씩 생기면서 갈등을 빚고 뜻하지 않은 속앓이도 수도 없이 벌어진다. 과정만 늘어놓고 봐도 ▲정비구역 지정 후 조합설립인가 ▲조합설립에서 사업시행인가 및 통과 ▲관리처분인가 ▲착공 ▲준공 등이다.
주택시장이 침체기였던 2013년께 서울 강북권에서 어렵사리 추진됐던 아파트들은 준공후 미분양이 예삿일이었다. 10년을 추진해 준공된 아파트지만, 조합원의 입주권도 쏟아졌던 시기였다. 긴시간 어렵사리 추진해 새 집에 들어가면서도 조합원들은 입주권을 포기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당시 기자가 취재한 대답중에 인상깊은 답은 '지긋지긋하다'였다.
골목에서 마주했던 이웃들과 새 집을 지어보겠다면서 호기롭게 시작했던 재개발은 이웃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의 집안사정까지 알게되고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는 준공됐지만, 미분양으로 인한 추가분담금은 부담되고 동네에 온갖 정이 떨어져 결국엔 입주권을 내놨다는 얘기였다. 조합원들이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는 건 '몸테크(몸+재테크)'의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몸테크는 재개발·재건축을 앞두고 주거환경은 열악하지만, 미래의 재테크를 위해 당장에는 힘든 몸을 감수한다는 말이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주로 하는 방식이다. 정작 살아보면 '말이 미래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냉난방, 주차, 상하수도 등 관련시설들이 닳을만큼 닳아버린 곳에서 거주하다보면 '몸테크 하다 몸살 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은 집을 지을 때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쓴다는 얘기지만, 정비사업에서 10년 세월은 체감이 아니라 정말로 지나는 시간이다. 조합원들의 빈부차이와 개인사정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지난다. 이처럼 정상적으로 흘러가도 족히 10년은 됐을 사업에 '분양가 상한제'라는 찬물이 쏟아졌다. 분양 전 기대이익도 재산권이라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도입했던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면서 분양승인 전 조합원 가치는 단순 기대이익이라며 재산권 침해가 아니라고 입장을 내놨다.
사업이 안갯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재건축을 중심으로 조합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지사다.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사업 주요 조합들은 내달 6일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번 시위에 참여하는 조합은 80여개, 참여인원도 2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분양가를 눌러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돕고 시세를 안정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여기에 전제는 그렇다. 무주택자들은 어려운 서민이어야 하고, 집값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나온 전망들을 보면 규제의 전제조건과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집값 하락', '공급 과잉' 등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예고하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올해 전국 주택시장 매매가격 변동률 전망치를 -1.0%에서 -1.4%로 수정했다. 감정원은 매년초 부동산시장 전망치를 발표하고 하반기에 수정 전망치를 한번 더 발표하는데, 이번에 나온 수정치는 집값이 예상보다 더 떨어진다는 전망이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더라도,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공급이 줄면서 기존 아파트값이 상승하지는 않는다는 추정도 덧붙엿다.
앞서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우리나라 주택공급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주택의 공급과잉을 전망하면서 준공후 미분양이 늘어나고 전셋값도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주택 공급 물량은 기초 주택 수요를 35만8000가구 초과했고 2016년에는 공급 과잉이 32만2000가구, 2017년 29만6000가구 이상이다.
내년엔 준공 후에도 분양되지 못하는 주택이 최대 3만 가구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과 함께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확산되면 임대인은 전세보증금 반환 압력이 커지고, 임차인 역시 돈을 제때 받기 힘들어 유동성 제약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집이 남아돌고 집값이 떨어진다는데, 집값을 인위적으로 누르는 분양가 상한제가 과연 필요할까? 다 떨어져도 강남만 집값이 오르고, 강남 집값이 집값 상승의 원흉이라고 치자. 과연 대출의 도움없이 분양가 상한제 덕을 보면서 강남에 입성할 수 있는 무주택자는 누굴까? 이제 정부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할 때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