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치인은 싫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형제"

한국에서 로밍해 온 휴대전화는 크림반도 심페로폴 공항 도착과 동시에 '제한구역서비스' 표시가 뜨며 먹통이 됐다.

로시야 시보드냐 통신 관계자는 "제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서방의 제재로 인해 크림반도 내에서 러시아 외 다른 국가의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크림반도는 평화로운 자연경관, 온화한 기후와 달리 정치적으로 곡절의 역사를 지녔다.

1783년 예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처음으로 러시아 제국에 복속된 크림은 이후 줄곧 러시아의 통제하에 있다가 옛 소련 시절인 1954년 우크라이나로 넘어갔으나 2014년 3월 다시 러시아에 병합됐다.

당시 주민투표에서 크림반도 주민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으나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투표 과정에서 러시아의 압력이 작용했다며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서방은 러시아의 석유, 금융, 군사 분야를 겨냥한 경제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련된 러시아 주요 인사들에 대한 여행 금지 및 자산동결 등의 제재를 가했다.

크림반도에 가해지는 서방의 제재는 병합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크림반도 병합 이후 5년 "제재는 여전…곳곳에선 공사 활발"
크림반도 곳곳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심페로폴 공항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 콕테벨로 향하는 도로에도 공사 차량이 줄지어 지나갔다.

합병 이후 러시아 정부 주도의 건설 사업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크림반도의 케르치와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주를 잇는 19km 길이의 다리 크림교를 건설하고 전력난 해소를 위해 화력 발전소 2기를 지었다.

크림반도 사람들도 병합 이후 달라진 점으로 가장 먼저 '인프라 건설'을 꼽았다.

심페로폴에 20년째 살고 있다는 세르게이(55)는 "새로운 시설을 짓고 도로를 내는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러시아 정부가 금전적 지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합 이후 크림반도 사람들은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전보다 더 강하게 느끼게 됐다"고 답했다.

제재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냐고 묻자 세르게이는 "노 코멘트"라며 웃었다.

크림반도 지역 교사 올가(54)도 병합 이후 삶에 대해 망설임 없이 "아주 좋다"고 답했다.

올가는 "물론 여전히 제재는 있지만, 러시아에 병합된 이후 크림반도에는 다리가 생겼다"며 "그 밖에도 사람들의 월급이 오르고 인프라 건설도 활발해졌다"고 설명했다.

크림반도 병합 이후 5년 "제재는 여전…곳곳에선 공사 활발"
크림반도 내에서도 대도시와 소도시 사람들 간 체감하는 변화는 차이가 있었다.

콕테벨 지역을 중심으로 28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는 이고리(55)는 병합 이후 삶이 전보다 더 팍팍해졌다고 말했다.

이고리는 "러시아 병합 이후 제재 때문에 크림을 찾는 이들이 눈에 띌 정도로 줄었다"며 "러시아 사람을 제외하고는 크림을 찾는 외국인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로운 다리를 세우고 도로가 나는 건 크림반도에서도 세바스토폴이나 심페로폴 같은 대도시의 이야기"라며 "크림의 작은 도시들은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고리는 "내 경우 병합 전보다 벌이가 절반으로 줄었다"며 "하지만 물가는 두 배 뛰어 전보다 생활이 힘들어졌다"고 털어놨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대해선 정치의 문제일 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휴가차 모스크바에서 크림반도를 찾았다는 옐레나(59)와 알렉산드르(61) 부부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친구이자 형제"라며 "정치인들 간 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알렉산드르는 "러시아는 항상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언제든 원한다면 러시아에 올 수 있으며 이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인의 러시아 출입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으나,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길은 사실상 거의 막혔다.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를 연결하던 철도와 도로는 2014년 이후 모두 통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친러 성향이 강한 도시인 하리코프에서 태어나 2009년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는 알렉세이(42)는 "크림반도 병합 이후 5년째 하리코프에 가지 못했다"며 "원하지만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알렉세이는 크림반도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도 아닌 나의 고향이자 내가 사랑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