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농단 2심 재판 다시 하라” >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뒷줄 왼쪽 일곱 번째)가 2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의 상고심 재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국정농단 2심 재판 다시 하라” >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뒷줄 왼쪽 일곱 번째)가 2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의 상고심 재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86억원 이상의 뇌물을 줬다.”

2016년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된 후 약 3년에 걸친 수사와 재판 끝에 대법원이 29일 내린 결론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삼성이 준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여원, 정유라 씨에게 제공한 34억원 상당의 말 세 마리,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 등을 모두 뇌물로 인정했다. 다만 형량이 가장 높은 재산국외도피죄에 대해선 무죄를 확정했다. 향후 열릴 2심 재판에서 이 부회장이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을지가 법조계와 재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재용 뇌물금액 늘었지만 형량 가장 큰 '재산국외도피죄'는 무죄
‘부정 청탁’, ‘말 세 마리 뇌물’ 모두 인정

‘국정농단’ 사건의 큰 줄기는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씨가 공모해 이 부회장 등 기업인으로부터 뇌물을 챙겼다는 의혹이다.

특검과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최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금 213억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 등 총 433억원의 뇌물을 약속하거나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뇌물 수수로 얽힌 구조지만 하급심 재판부마다 뇌물로 인정한 액수가 달랐다. 지난해 2월 이 부회장 항소심에선 삼성 측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에게 흘러들어간 뇌물이 36억여원이라고 봤다. 6개월 뒤 박 전 대통령 항소심은 삼성으로부터 86억여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을 건네며 박 전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각종 현안에 대한 부정청탁을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의 대상 또는 내용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공무원의 직무와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 사이의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은 정부 수반으로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기업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이런 대통령의 포괄적인 권한에 비춰봤을 때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에선 뇌물로 인정됐지만 이 부회장 항소심에선 인정되지 않은 말 세 마리에 대해서도 뇌물로 결론지었다. 법적 소유권 이전 여부와 상관없이 최씨가 말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사실상 뇌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수의견으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두 차례의 단독 면담에서 ‘좋은 말을 사줘라’는 요구를 받았고 2차 단독 면담에서 재차 요구를 받은 다음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승마 지원을 했다”며 “2015년 11월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이 최씨가 말 소유권을 갖기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므로, 양측 사이에 말을 반환할 필요가 없고 실질적인 사용·처분 권한을 이전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승계작업 효과는 결과적인 것에 불과”

반대 의견을 낸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부정청탁의 존재를 입증하는 특검 논리가 빈약하다고 반박했다. 이동원 대법관은 “특검이 주장하는 승계 현안 중 일부는 그것이 성공할 경우 이재용의 삼성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사후적·결과적으로 그런 효과가 일부 확인된다는 것뿐이지, 이런 사정만으로 승계작업을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대가라는 점에 대해 공통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이 사건에선 승계작업을 인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재용과 박근혜 사이에 승계작업의 대가성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수 의견에 의해 뇌물로 인정된 말 세 마리에 대해서도 이들 세 대법관은 “박상진은 최씨의 면담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최씨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지, 말의 소유권 또는 실질적 처분권을 이전해 주기로 한 것은 아니다”며 “고가의 말들을 뇌물로 제공했으면서 정작 소액의 차량대금을 코어스포츠로부터 지급받고 매도한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날 선고가 끝난 직후 박영수 특검은 입장문을 내고 “이 사건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집합적인 요구에 따라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수사하게 된 초유의 일이었다”며 “향후 파기환송심 재판의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을 대리한 이인재 변호사는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와 뇌물 액수가 가장 큰 미르·K재단 관련 뇌물죄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연수/남정민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