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총재는 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서 소위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부쩍 늘어나는 게 작금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총재는 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서 소위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부쩍 늘어나는 게 작금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은행은 30일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2개월 연속 금리 인하는 부담이 큰 데다 시장의 우려를 더 키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대신 오는 10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추가적으로 내년 상반기에 한 차례 더 내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만큼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2.2%) 달성이 어렵다”고 내다봤다. 소비 침체가 한층 심화된 점도 한은으로서는 부담이다.

“올해 한 번, 내년 상반기 한 번 내릴 듯”

이주열 "올해 2.2% 성장 쉽지않다"…10월 금리인하 유력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1.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통화정책 여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섣불리 쓰기보다는 한 번 정도 지켜보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의 실효하한 금리를 1.0%로 보고 있다. 실효하한 금리는 유동성 함정이나 자본유출 등을 고려한 기준금리의 하한선이다. 현 기준금리(연 1.50%)를 고려하면 한은은 0.25%포인트씩 두 차례 인하카드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기준금리 결정 금통위는 오는 10월 16일과 11월 29일 두 번 열린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아낀 금리인하 카드를 이르면 10월에 꺼낼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만큼 완화적 통화정책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서다. 한은은 지난달 통화정책방향에선 세계 경제에 대해 ‘성장세가 완만해지는 움직임’이라고 진단했지만 이번에는 ‘성장세가 둔화됐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움직임과 일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에서의 포퓰리즘 정책, 신흥국의 금융위기 등이 동시다발로 작용하다 보니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부쩍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이번 금통위에서는 일곱 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조동철 위원과 신인석 위원 두 명이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김상훈 KB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한은이 올해 10월 기준금리를 내린 이후 미·중 무역분쟁이 올해 봉합될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내년 1월 재차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첫 마이너스 물가 눈앞

물가 상승률이 전례 없이 낮은 수준으로 둔화된 가운데 이 총재가 마이너스 물가 가능성을 시사하자 학계에서 경기 침체로 저물가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는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가시화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개월 정도 마이너스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의 발언이 현실화된다면 사실상 해방 이후 처음으로 물가가 뒷걸음질 치는 것이다. 역대 물가가 가장 낮았던 시기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월로 0.2%를 나타냈었다. 올 들어 1월부터 7개월 연속 0%대 상승률을 나타내더니 급기야 과거 경제위기 때도 경험하지 못한 마이너스 물가를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한은은 물가가 바닥을 기는 동안 유가 변동이나 날씨 등에 따른 일시적인 공급 측 요인이라는 설명만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기 하강에 따른 수요 부진을 주된 요인으로 꼽는 시각이 적지 않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물가 흐름을 보면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며 “일본식 장기 불황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익환/고경봉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