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스트로-SBS 복고 채널’ 에서 선보이고 있는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SBS제공
유튜브 ‘스트로-SBS 복고 채널’ 에서 선보이고 있는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SBS제공
‘순풍 산부인과’ ‘지붕뚫고 하이킥’ ‘가요톱10’ ‘야인시대’…. 제목만 들어도 왠지 애틋한 마음이 든다. 많은 30~40대가 그럴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도 TV 앞으로 가 꼬박꼬박 챙겨보던 방송들이 아니던가. 어른이 된 지금, 이들은 다시 그 프로그램을 꺼내 들고 있다. TV 대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켜고 1990~2000년대 방송들을 본다. 각 방송사들은 잇달아 유튜브 채널을 열고 이 영상들을 올리고 있다. ‘MBC CLASSIC’, ‘스트로-SBS 복고 채널’, ‘Again 가요톱10’가 대표적이다. ‘MBC CLASSIC’은 구독자가 171만명에 달한다. ‘스트로-SBS 복고 채널’, ‘Again 가요톱10’도 각각 10만명, 6만5000명을 기록하고 있다.

대중들이 새로운 플랫폼 안에서 과거 콘텐츠로 회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매일같이 참신한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오히려 방향을 틀어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TV에서 유튜브로 시선을 옮겨간 지금, 왜 굳이 과거 작품들에 열광하는 걸까.

단순히 패션처럼 콘텐츠의 유행도 ’돌고 돈다’고 단정짓긴 어려울 것 같다. ‘복고’ ‘레트로’라는 기존의 현상들과는 차이가 다소 있기 때문이다. 과거 MBC 예능 ‘무한도전’이 H.O.T, 젝스키스 등 아이돌 1세대들을 소환해 많은 팬들의 호응을 받았던 것을 떠올려보자. 이는 TV가 만들어낸 현상을 오랜 시간이 흘러 TV가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또 과거 모습에 변화를 주기보다, 복원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 유튜브에서 마주하는 콘텐츠는 이전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순 없다. 일종의 ‘리스타일(restyle)’ 과정을 거친 새로운 콘텐츠다. 유튜브에서 기존 방송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편집을 해 2차 콘텐츠를 생산한다. ‘야인시대’에서 특정 캐릭터 영상만 골라내 ‘김두한 액션 명장면 zip’ 등으로 만들거나, ‘가요톱10’에서 ‘영광의 골든컵 모음 zip’을 선보이는 식이다. 현재의 감각과 시선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들을 선택하고, 변형과 윤색 작업을 하게 된다.

리스타일로 새 틀을 입히는가 하면, 옛 작품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콘텐츠 형식을 재발견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유독 시트콤이 인기인 것은 그 형식에 대한 갈증을 잘 보여준다. 시트콤은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한 장르다. 코미디처럼 가벼우면서도, 캐릭터가 다채롭고 극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0년대 들어 거의 사라졌다.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가 적어 캐스팅과 촬영 등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이 콘텐츠 형식을 접한 대중들은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과거보다 현재 감각에도 더 잘 맞는다. 지금의 대중들은 장대한 서사보다 가벼우면서도 메시지가 있는 ‘스낵컬처’를 선호하지 않는가.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향수도 마찬가지다. 과거 가요 방송은 현재의 틀과 달랐다. 전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었다. ‘가요톱10’에선 다양한 색채를 가진 가수들이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대중들은 순위가 발표되기 전까지 마음을 졸이다가 발표 후엔 전설의 탄생에 기뻐하며 열광했다. 때론 5주 이상 연속 1위에 오르는 ‘골든컵’의 영예를 차지하는 가수가 나타나기도 했고, 때론 그를 따라잡고 1위에 오른 신예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감동은 이젠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음악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제 5주는 커녕 3주 이상 1위에 오르는 가수도 드물다. 비슷한 유형의 아이돌만 나오기 때문에, 순위에 큰 의미도 없게 됐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보석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일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작품이든 소재는 크게 다를 수 없다. 과거든 현재든 비슷한 스토리가 반복될 뿐이다. 오히려 이 안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일 수 있다. 유튜브란 거대하고 새로운 플랫폼 안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새 틀을 입혀 보기도 하고, 흘려보냈던 과거의 틀을 꺼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